MBC 사장의 위험한 노동 인식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편집위원회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10.16 15:36:20
김종국 MBC 사장은 지난 8일 노사협의회에서 “MBC노조가 전국언론노조를 탈퇴해야 단체협상 체결이 가능하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김 사장은 “조합이 소속돼 있는 언론노조, 그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엔 정치위원회가 있고 규약상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지향하는 정파적 정치성을 띤 만큼 조합과 공정방송을 논의하는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고 MBC노조는 공개했다. 또 “단협 협상은 하겠지만 이 부분에선 뒤로 물러서거나 타협할 여지가 없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는 것이다.
이에 MBC 측은 발언이 와전됐다고 해명했다.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해 상급단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비춘 것일 뿐 탈퇴를 조건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김 사장은 이전부터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수차례 ‘MBC노조의 산별노조 탈퇴’를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남MBC 사장 시절 지역MBC 통폐합 과정에서도 노조에 대해 적대적인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때문에 MBC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논란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부는 상급단체 탈퇴를 요구하는 사용자 측의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한 바 있다. 지난 4월 경남 창원의 자동차부품업체인 센트럴에서는 민주노총 탈퇴를 고용안정의 조건으로 명시한 ‘확약서’가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이 확약서에는 센트럴 노조가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를 탈퇴하고 한국노총으로 상급단체를 바꾸면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부산지방노동청 창원지청은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판단해 검찰에 송치했다.
노동조합이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정책을 채택하는 정당이나 인물을 지지하는 것은 선진국에서도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1200만명의 조합원이 소속된 미국 최대 노동자 조직인 노동총연맹산별노조(AFL-CIO)는 지난 8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으로 재닛 옐런 부의장을 지지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들은 또 지난 2008년 대선에서는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공식 지지하기도 했다.
독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공영방송의 노조가 정치적 입장을 지닌 상급단체에 소속돼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이치에 맞지 않다. 이미 세계적 공영방송 노조들은 사회적 제약없이 정치적 활동을 벌이고 있다.
BBC노조가 소속된 영국언론노조(National Union of Journalists, NUJ)는 영국노동조합회의(Trade Union Cogress, TUC)에 참가하고 있다. 600만명의 조합원들이 소속된 TUC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20세기 초 노동자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위해 현 노동당의 전신인 ‘독립노동당’의 창당을 주도했다. 지금도 TUC는 노동당의 가장 큰 지분을 가진 조직이다.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 관련 노동조합의 연합체인 NHK노련도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의 일원이다. 렌고는 일본 민주당과 정책연대를 통해 2009년 54년만의 정권교체를 이뤄내기도 했다.
MBC는 총파업이 끝난 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다. 해직된 기자와 PD들의 복직은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는 상태다. 떨어진 뉴스에 대한 신뢰도도 회복될 기미가 희미하다. 문제가 풀리지 않는 배경에는 방송문화진흥회 일부 이사들과 경영진의 위험한 노동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MBC 사측은 MBC가 영광을 되찾기를 바라는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노사 대화에 진정성을 갖고 성실히 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