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전 이사장의 유신 미화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오늘은 당신의 따님 박근혜 대통령 정부 아래서 마음껏 당신을 추모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니 당신을 향한 그리움이 더욱 간절하고 사무칩니다.…우리 서민들은 간첩이 날뛰는 세상보다는 차라리 유신시대가 더 좋았다고 부르짖습니다. 각하! 아직도 5·16과 유신을 폄훼하는 소리에 각하의 심기가 조금은 불편하실 걸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태산 같은 각하의 뜻을 소인배들이 어찌 알겠습니까.”

손병두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이 지난 26일 낭독한 10·26 34주년 기념사다. 특정인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재단의 행사에서 그 정도 말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또 우리나라 국민 중에 이 생각에 동의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손 이사장은 ‘따님’이라고 부르며 애틋함을 과시한 박근혜 대통령조차 곤경에 빠뜨렸다. 박 대통령은 대선을 앞둔 지난해 9월 “5·16과 유신, 인혁당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며 유신을 비롯한 과거사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손 이사장의 발언을 보면 박 대통령의 사과는 결국 표를 의식한 술수에 불과했다는 해석이 나옴직하다.

무엇보다 손병두 이사장이 KBS 이사회의 이사장이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씁쓸하다. 이렇게 편향된 세계관을 가진 인물이 3년 동안 한국 최대의 공영방송 KBS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보장하고 공적 책임을 관리하는 이사회의 수장을 지냈다.

KBS 방송문화연구소가 지난 6월 발간한 ‘공영방송’ 창간호는 전국 성인남녀 1025명을 대상으로 공영방송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임무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존중하는 것’과 ‘지역, 세대, 계층, 성별 간 갈등을 조장하지 않는 것’이 1, 2위로 꼽혔다. 그밖에 ‘민주적 여론 형성에 기여하는 것’ ‘국민화합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손 이사장의 생각은 국민들의 공영방송에 대한 인식과 크게 어긋난다. 민주적 기본질서의 근간인 헌정을 중단시키고 인권을 짓밟은 인물을 일방적으로 칭송하고, 유신시대를 비판하는 의견을 소인배의 단견으로 몰아붙이며 갈등을 조장했다. 이런 극단적 가치관은 민주적 여론형성에 기여할리 만무하고, 국민화합보다는 분열과 반목을 부추길 게 뻔하다.

왜 그가 이사장일 때 KBS에 ‘이승만 다큐’ ‘백선엽 다큐’ 등 과거사 미화 프로그램 때문에 평지풍파가 시작됐는지 알 수 있다. 여기서 계승된 성과는 KBS ‘다큐극장’을 보면 잘 드러난다. 방송된 23편 중 13편이 박정희 정권의 업적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가 KBS 이사장으로서 남긴 최대 업적은 ‘특보 사장’을 뽑은 것이다. 유재천 이사장-이병순 사장 체제의 KBS가 온갖 무리수를 두며 정연주 전 사장을 축출하고 비판적 프로그램을 무력화하는 ‘정지작업’을 했다면 그가 재임했던 3년간은 이를 시스템화하는 기간이었던 셈이다.

그럼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KBS 이사회는 정치적 독립성을 지켰느냐는 반론이 나올 것이다. 과거 이사회에 대한 평가는 둘째 치고, 설령 어제에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오늘은 과오를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손병두 이사장 시대를 비롯한 과거를 거울삼아 KBS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생산적 토론이 필요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수가 교대되는 수신료 논란을 이제 종식시키기 위해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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