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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9일 정오 무렵, 당시 중앙일보 편집국장이던 전영기 선배(현재 JTBC 9시뉴스 앵커 겸 논설위원)와 탐사팀 김남중 부장(현재 사회1부장)과 팀원들은 회사 근처 한 식당에서 막 점심을 먹던 중이었다. 전 선배는 이 자리에서 “내년 2월이면 MB정부 출범 4주년이 되는데 타이밍을 맞춰 그간의 대통령 인사 문제를 종합 점검하는 심층 보도를 준비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전 국장의 이날 제안은 2개월 후 탐사팀이 ‘MB정권 4년 인사 대해부’라는 기획시리즈를 보도하게 된 계기가 됐다. 정확하게 날짜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바로 아이템 얘기를 나누던 중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이라는 초대형 뉴스가 속보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논의되던 아이템 얘기는 순식간에 묻혀버렸다. 이날 오후부터 이듬해 초까지 전 언론은 김정일 사망 뉴스와 관련 기획기사들을 쏟아내기 바빴다. 사내 누군가는 “탐사팀이 평양에 들어가 현지 잠입취재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 섞인 얘기도 들렸다. 이후 한달 내내 온통 북한 관련 뉴스가 터져나오던 당시 탐사팀은 12월 말부터 기획회의에 들어갔다. 회의 전 탐사팀의 김보경 정보검색사는 MB 정권 출범 이후 인사문제와 관련된 기사들을 뽑는 작업을 했다. 주로 단신보다는 심층성을 담은 기획기사 위주로 스크랩하는 작업이었다. 그동안 나온 인사 기사는 대부분 인사직후 학맥, 지연 등을 중심으로 한 내용이었다. 또 청와대 인사, 정부 장차관인사, 공기업 인사 등이 시간차를 두고 이루어진 만큼 기사 역시 각각의 부문별 분석 기사가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역시 취재팀의 고민은 ‘하늘 아래 새로운 아이템이 없다’는 것이었다. 비록 파편적으로 다루기는 했지만 대체로 인사의 문제점들에 대한 분석과 비판은 그때그때 충실하게 다뤄져왔기 때문이다.
◇양과 질로 승부하자
아이템 자체가 새로울게 없다면 양과 질로 승부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었다. 우선 MB정부 4년 동안에 대통령 영향력 하에 이루어질 수 있는 모든 ‘자리’를 다 들여다보기로 했다.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정부 부처 장차관, 공기업ㆍ공공기관 사장, 대표, 감사, 이사(사외이사 포함)는 물론이고 특히 4대권력 기관인 검찰, 경찰, 국세청, 국정원에 대한 집중적 인사 분석을 하기로 결정했다. 거기에 스토리를 입히는 작업도 필요했다. 단순히 인물들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작업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이들이 그 자리에 가게된 배경과 과정을 포함한 뒷얘기들을 가능한 부분까지 최대한 현장취재(주변인 증언과 본인 진술 등)를 통해 담기로 했다. 한마디로 뼈대를 튼튼히 세우고 거기에 살을 붙이는 작업을 제대로 해야한다는 공감대가 취재팀 내부에서 이루어졌다.
또 하나의 문제는 취재대상에 해당하는 이들을 어떤 기준에 의해서 분류하는가였다. 취재팀은 ‘인연의 고리’라는 표현을 붙였다. 고려대, 영남, 서울시, 인수위, 대선캠프, 한나라당이 바로 그 고리에 해당했다. 인연의 고리는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거나 임명에 관여한 인사의 인선 배경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단서에 해당한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해 그 최측근 그룹과 해당 인사 대상자가 어떤 인연의 끈을 갖고 있는지를 보면 인사의 기준이나 원칙을 분석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것이 인사 분석 대상자들에 대한 기본 데이터 정리였다. 앞서 말한 인사들에 대한 전수 조사를 가정으로 그 숫자를 따져봤더니 대상자가 1500여명이 넘었다. 문제는 숫자 자체가 많다는 것이 아니라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일부 인사들(가령 사외이사처럼)이 의외로 많아 하나하나 확인해 나가야 한다는 부분이었다. 특히 공공기관ㆍ공기업에 재직중인 인사들에 대한 정보는 그동안 언론에 보도되거나 인터넷 서핑을 통해 찾아낼 수 있는 자료를 이용하더라도 턱없이 부족한 항목들이 많았다. 또 사외이사의 경우 현직과 교체된 인물들을 모두 다 파악해 신상정보를 일일이 조사 해야 했는데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2월25일 대통령 취임 4주년 전까지 기사를 모두 작성해 사전 제작을 해야하는 타임테이블을 고려해 봤을 때 한달 반 정도 남은 시간동안 탐사팀 기자 3명이 이런 모든 데이터를 조사해 정리하고, 또 관련 인물들을 만나 증언을 청취하는 등 현장 취재까지 마치기에는 너무 촉박한 시간이었다. 마침 당시 중앙일보에는 겨울 방학을 이용해 채용된 대학생 인턴기자들이 교육을 받고 있었고 이들의 존재는 인력 부족에 허덕이고 있던 탐사팀에게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다. 당시 대학생 인턴기자들은 3~4명씩 각 부서를 돌고 있었는데 마침 탐사팀에는 3명의 인턴기자가 배치돼 있는 상태였다. 탐사팀 막내 기자인 박민제 기자는 이들 인턴기자들과 함께 취재대상자들에 대한 신상정보를 파악해 정리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어쩌면 가장 힘든 작업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데이터를 정리하면서 애초 대상자에 넣었던 이들 중 어쩔 수 없이 제외함으로써 100% 완벽한 전수조사를 하지 못한 것은 이번 기획취재에서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으로 남아있다. 앞서 잠깐 언급한 바로 사외이사 들이었다. 수 백명에 달했던 이들 중 70%는 인연의 고리에 따른 정보 파악이 가능했다. 하지만 나머지 30%가 문제였다. 시간이 많이 있었다면 더 조사해 포함시킬 수 있었을텐데 여건은 그렇지 못했다. 그렇다고 파악된 사람만 분석 대상에 넣고 나머지는 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취재팀은 회의를 통해 사외이사를 제외하기로 결정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낙하산 인사 중 가장 티 안나게 할 수 있는 자리 중 하나가 사외이사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었다. 아무튼 데이터베이스 정리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중앙일보 인물정보 DB인 조인스 인물정보나 인터넷에 나오지 않은 인사들은 해당 기관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확인작업을 거쳤다. 그렇게 해서 빈칸을 하나하나 완성시켜나갔다.
◇대선캠프ㆍ인수위 명단 확보하라
정리 과정에서 인수위와 대선캠프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도 녹록치 않았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인 대조자료가 필요했다. 2007년 대선 당시 캠프 전체 명단과 2008년 1월 초 구성된 인수위원들의 전체 명단을 확보하는게 시급했다. 당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핵심 인사들에게 자료를 요청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전체 자료를 가지고 있다는 사람은 없었다. 공식적인 자료는 물론 존재했다. 하지만 비공식 라인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들까지 모두 담은 자료는 구하기가 어려웠다. MB의 최측근중 한 사람으로 대선 때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정두언 의원을 포함해 정치권 여러 인사들을 접촉해 겨우 관련 자료를 구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자료도 완벽한 것은 아니었지만 분류 작업에 활용할 수 있을 정도는 됐다. 현장 취재는 취재팀이 부딪힌 또 하나의 난관이었다. 인사가 이루어질 때 마다 어떤 배경에서 결정이 됐는지 구체적 증언이 뒷받침돼야 했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접촉한 이가 바로 왕차관으로 불렸던 박영준씨였고, 그와 갈등을 빚었던 정두언 의원이었다. 정 의원을 만나 대선캠프와 인수위 때 있었던 이야기부터 이후 청와대와 정부 구성과 관련된 비화들을 듣게 됐다. 그의 말을 과연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가는 대목이 있었고, 이는 또 다른 인사들의 증언을 통해 크로스 채킹하는 작업을 거쳐야했다. 이를 위해 정권 초기 청와대 행정관, 비서관 등도 접촉했다. 취재팀은 대구에서 한창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이던 박영준씨도 현지에서 만날 수 있었다. 처음에 그는 탐사팀의 취재 의도와 관련 상당한 경계를 갖고 있었지만 충분한 설득을 거쳐 어렵게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물론 박씨의 증언 대부분은 MB정권 인사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설명하는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또 정두언 의원과 벌어졌던 암투와 갈등에 대한 입장도 들을 수 있었다. 대선 당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외곽조직에 대한 취재도 빠뜨릴 수 없었다. 박영준씨가 이끌었던 ‘선진국민연대’와 박창달(현 자유총연맹 총재)과 이영수(KMDC 회장)씨가 이끌었던 ‘국민의 힘’이 주요 취재대상이었다. 특히 선진국민연대 출신 인사들은 대선 후 정권 말까지 주요 포스트에 임명돼 활동하고 있었다. 선진국민연대의 위세에 다소 밀리기는 했지만 국민의 힘 출신 인사들의 증언도 대통령 인사 과정에서 벌어졌던 복마전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이렇게 현장취재와 데이터베이스 정리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는 와중에 어떤 분석기법을 동원할 것인지는 기사의 전체 틀을 짜는데 핵심 부분이었다. 이 부분은 주로 탐사팀 선임 기자였던 최준호 기자(현재 세종시 출입)와 탐사부장인 김남중 선배의 몫이었다. 특히 최 선배는 치밀함과 뚝심으로 뻔한 아이템에서 출발한 이번 기획기사가 차별화된 보도로 이어지는데 있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사회과학적 분석기법 총동원
이번 기획기사에는 다양한 사회 과학적 분석 기법이 동원됐는데 바로 사회관계망분석(social network analysis)과 이를 바탕으로 한 이벤트 히스토리(event history) 분석 기법이었다. 사회관계망 분석 전문가인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이원재(사회학) 교수 팀과 권혜진 데이터저널리즘연구소 소장이 참여해 취재에 큰 도움을 주었다. MB의 경력 일곱 가지(인연의 고리)를 944명(최종 분석 대상자 숫자)의 고위직 인사가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는지를 선(線)으로 연결하고, 숫자화해 표시하기로 했다. 이벤트 히스토리는 일종의 시계열 분석이었다. 시간의 선 위에 인연의 고리를 수치화해 풀어놓았다. 서울대 박기호(지리학과ㆍGIS연구소) 교수는 위의 분석을 한눈에 알아보기 위해 숫자로 나타난 지역별 비율을 지도에 표시했다. MB 정부 TK지역 인사가 조인스 인물정보 모집단에서의 비율보다 많을수록 대구ㆍ경북지역이 부풀려지는 방식이었다.
또 4년 동안 MB정부에서 두 차례 이상 고위직을 거친 인사 101명을 일일이 추려내 이들에 대해 별도 분석도 했다. 결론은 이들 중 67%는 최소 하나 이상 대통령과 ‘인연의 고리’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보면 영남 출신이 39%로 가장 많았다. 또 대통령선거캠프와 이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출신이 각각 33%에 달했다. 대통령의 모교인 고려대 출신도 전체의 18%로 분석됐다.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어야 두 자리 이상 자리에 중용되는지 과학적으로 드러나게 됐던 것이다. 즉, 대통령과 인연의 고리가 많을 수록 여러 자리에 반복돼 기용될 확률이 높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들 101명 중 세 차례 이상 요직에 기용된 인사도 24명이나 됐다. 이 가운데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지난 4년간 총 네 차례 중용돼 다관왕을 차지했다.
첫회 기사가 2012년 2월20일 나갔다. 제목은 “MB인사 관계망 중심에 박영준 있다”였다. 분석결과 박씨가 가장 많은 인연의 고리로 대통령과 이어져 있었고 또 다른 주요인사들이 박씨와 수없는 실선으로 연결된 것이 그대로 드러났다. 대통령의 형님인 이상득 의원은 임명직이 아닌 선출직이었기 때문에 인사대상 자체에 포함되지 않았다. 문제는 박영준이라는 이름 석자를 1면 제목에 넣어야하는지 여부였다.
고민 끝에 취재팀은 그의 실명을 제목에 넣기로 결정했다. 남은 것은 편집국장인 전영기 선배의 최종 결정이었다. 사실 전 선배 입장에서는 상당히 큰 부담을 안아야 했다. 정치부 기자 생활을 오래했던 전 선배는 개인적으로는 박영준씨와는 잘 아는 사이였고(본인 표현으로는 친구사이라고 했다) 더구나 총선 예비후보로 등록한 상태였기 때문에 중앙일보 기사가 그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고민될 수 있는 대목이었지만 전영기 국장의 결단은 과감했다. 그는 어떠한 정무적 판단도 배제하고 취재 분석 결과를 존중하는 결정을 내렸다.
“박영준씨한테 항의가 들어와도 내가 책임질테니 그대로 내보내라”는 것이었다. 과학적인 분석 과정에서 그의 이름이 맨 가운데 있다는 팩트가 확인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신있게 밀고 나가라는 지시였다. 실제로 박씨는 나중에 전 국장에게 항의성 전화를 해 왔지만 국장은 담담하게 이를 받아 넘겼다. 당시에도 그렇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고마운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기사는 2월23일까지 나흘 연속 1면과 종합면 1~2개면을 장식하며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가장 먼저 반응이 온 곳은 청와대였다. 불만은 있지만 엄격한 분석을 통해 나온 결과라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정치권에서도 긍정적 반응이 나왔다.
◇인사 비화 등 스토리 빠져 아쉬움 커
한가지 크게 아쉬운 대목은 스토리가 상당부분 빠졌다는 점이다. 많은 취재를 했지만 기사에는 20%도 반영이 안됐다. 바로 총선을 앞둔 시점이라는 시기적 민감성과 일부 주장이 엇갈리는 부분의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분석 대상의 상당수가 총선 예비후보로 등록한 상태였고, 중앙일보 기사로 인해 당 내부 경선이나 본선에까지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국장과 부장 팀원들은 회의 결과 스토리를 상당부분 드러내자는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최대한 외부로부터 항의나 시비를 피해갈 수 있도록 확인된 팩트 위주로 드라이하게 보여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아마 총선이라는 민감한 시기가 아니었다면 좀 더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담길 수 있었을텐데 하는 변명을 해 본다.
한국기자협회는 본 시리즈에 대해 이달의 기자상과 함께 한국기자상으로 선정해주었다. 다시 한 번 취재팀의 고생과 노력을 인정해 준 기자협회와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다. 또 김남중 부장과 전영기 당시 편집국장께도 이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박근혜 정부 역시 출범 초부터 인사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아마 조금 있으면 대대적인 공공기관, 공기업 물갈이 인사도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인사는 만사라는 경구가 이번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에서 다시 한번 확인됐다. 이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1차적 임무는 언론인들에게 있다. 중앙일보 탐사팀이 다 담지 못한 스토리가 담긴 더 훌륭하고 치밀한 인사분석 기사가 나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