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팔 사건'은 진행형이다!



   
 
   
 
‘조희팔’지금 어디 있나?
조희팔 사건 관련 다큐멘터리 ‘KBS 시사기획 창, 조희팔 살아있다’로 2012년 제44회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한국기자협회 등록 회원이 1만 여명이라고 하니, 본인에게는 더 할 수 없는 영광이고 명예다. 그러나 조희팔 사건으로 여전히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수만 명의 피해자들을 생각하니 마냥 좋은 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기자수첩 한 곳에 빼곡히 정리해 놓은 ‘조희팔 사건’의 미스터리를 앞으로 계속 하나하나 파헤쳐 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이래저래 조희팔 관련 보도로 상을 받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때때로 묻는다. ‘조희팔 지금 어디 있어요’. 조희팔 관련 취재를 시작한 것이 2012년 지난 해 9월 무렵이다. 많은 사람을 만났고, 조희팔과 관련된 수많은 제보를 받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 팩트로 확인된 정보에 대해서만 지난 해 11월16일 KBS 뉴스 9리포트, 11월20일 <시사기획 창> 다큐멘터리로 방송했다. 방송은 조희팔 사망을 공식 발표했던 경찰청이 사망의 진위여부를 원점에서 재수사하겠다고 밝힐 만큼 신뢰할 만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보도 이후에도 많은 제보가 있었다. 조희팔의 새로운 중국 거처와 사업상황, 지인 관계 등에 대한 내용도 있었고, 심지어 한국에 이미 입국했다는 말도 있었다. 조희팔이 숨겨 놓은 재산에 대한 정보도 있었다. 은닉 재산 관리인과 유착세력에 대한 믿을 만한 제보도 있었다.

그러나 뉴스 보도에서 제보는 ‘팩트 확인’을 전제로 방송할 수 있다. 안타깝고 죄송스러운 것은 석달에 50분 분량의 시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송해야 하는 본인의 업무 특성상 지난 해 11월 말 방송 이후 계속 ‘조희팔 사건’을 팔로우 할 수 없었다. 다른 아이템을 취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보 하나하나를 검증하고 확인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새로 업데이트 된 정보를 담은 보도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수많은 피해자들의 처지에서 보면 조희팔 사건이 진행형인 것처럼 본인에게도 조희팔 사건은 진행형이다. 진행형인 그 사건에 대한 취재를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조희팔 지금 어디 있어요’ 그 답을 찾아 가는 장정을 시작하고자 한다.

과장된 연출 ‘장례식, 과연 진실일까’로 시작한 취재
2012년 5월 21일, 많은 사람들이 방송 뉴스를 통해 조희팔의 장례식을 지켜봤다. 경찰이 유족에게 넘겨받아 공개한 영상을 보면 황금색 두건을 머리에 두른 남자가 투명한 유리관 안에 누워 있다. 망자의 얼굴로 카메라가 천천히 무빙해 들어가면서 유리관 안에 누워 있는 사람이 분명 ‘나 조희팔 이다’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주변의 지인과 친척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누가 보더라도 ‘조희팔’이라는 인물은 이미 죽었고, 분명 그의 장례식이 열렸음을 보여주기 위해 촬영한 영상이다. 그러나 본인은 기자로서, 방송기자로서 그 영상을 곧 ‘조희팔의 죽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뉴스나 다큐멘터리 등 모든 촬영에는 촬영을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곧 촬영에 앞서 ‘이 영상으로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가 분명히 세워져 있다는 것이다. 조희팔 장례식 영상은 조희팔의 죽음을 알리고 싶은 촬영 의도가 담겨 있다. 우리 전통 장례 풍습과 도덕에 맞지 않게 망자의 얼굴까지 확실히 보여주면서 까지 죽음을 알리고 싶은 의도라면....분명 그럼으로써 이득을 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조희팔의 죽음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이고, 또 알리고 싶은 사람은 누구일까? 그것은 아마도 이 사건의 본체이자 주범인 첫 번째 당사자, ‘조희팔’일 것이다. 그리고 다음은 그의 측근들...

흔히 조희팔 사건을 이야기 할 때 ‘단군 이래 최대 사기사건’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경찰 추산 3조 5천억, 피해자 3만 여명, 피해자 단체 추산으로는 5조원, 피해자가 10만 여명이다. 가히 사건의 규모와 피해 양상으로 따져 보면 ‘단군 이래’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 하다. 그러나 조희팔 사건은 2008년 조희팔의 중국 밀항과 2012년 경찰의 사망 발표로 미궁에 빠져 있다. 드러난 은닉 자금은 2천억 정도에 불과하고, 비호 유착세력 수사도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더더구나 수많은 피해자들이 아직 단 한 푼도 범죄 피해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조희팔 사건이 발생한 지도 5년이 지났다. 현재 시점에서 조희팔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은 조희팔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중요한 단초이다.

‘조희팔 사망의 진실’ 너무나 쉽게 해결 된 의문
조희팔 사건과 관련된 국내 취재를 마치고, 11월초 조희팔이 밀항해서 도피생활을 하고 있는 중국 산둥성으로 갔다. 조희팔 옛 측근과 피해자 등을 통해 조희팔의 중국 은신처, 자주 다니는 식당과 골프장 등지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은신처 아파트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자주 드나 든 식당에도 발길을 끊은 지 오래 돼 최근의 행적을 알지 못했다.
조희팔은 정말 사망한 것일까? 다시 취재를 시작했다. 조희팔이 사망했다는 근거로 발표된 정황들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우선 조희팔이 사망한 장소로 발표된 웨이하이의 한 호텔로 찾아갔다. 그런데 그 호텔 직원은 ‘그런 사실이 없다’며 전혀 다른 말을 했다. 호텔 직원은 취재진의 계속된 질문에 조희팔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당일 본인이 근무가 아니 었을 수도 있다며 다른 직원들 까지 불러 ‘그런 일이 없었다’는 것을 재삼 확인해 줬다.

조희팔이 자주 갔다는 골프장은 어떨까? 골프장 네 곳을 뒤졌다. 두 곳에서는 골프장 캐디들이 모여 휴식을 하는 곳 까지 찾아갔다. 그런데 그 두 곳의 골프장에서 조희팔과 2인자 강태용을 목격했다는 증언이 쏟아졌다. 사망했다는 2011년 12월 이후, 그러니까 지난해에도 다른 한국 사람들과 함께 골프장을 드나들었다는 것이다. 조희팔 일행을 직접 안내했던 한 캐디는 조희팔의 골프 타수와 일행의 인상착의 등도 기억하고 있었다. 사망했다는 조희팔이 골프를 쳤다?

그러나 골프장 목격자의 증언만으로는 정보 벨류가 떨어진다는 판단에 따라 옌타이 공안국을 직접 취재하기로 했다. 옌타이 공안국은 조희팔과 함께 인터폴 수배가 된 일당 2명을 체포해 한국으로 보낸 수사 기관이다. 그 사건을 직접 담당했던 경제범죄 수사대장을 하루 종일 기다린 끝에 어렵게 만났다. 그런데 그 수사대장이 폭탄선언을 한다. “조희팔이 지금도 칭다오, 웨이하이, 옌타이에 거처를 마련하고 숨어 살고 있다” “일당 두 명을 체포할 때 조희팔을 검거할 수도 있었지만 상부의 검거 지시가 없었다” “한국 경찰이 조희팔이 사망했다고 발표한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조희팔은 죽지 않았다. 지금도 지시만 있으면 체포할 수 있다”

사실 많은 언론에서 그동안 조희팔이 과연 사망한 것인가에 대한 의혹을 제기해 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사가 피해자 단체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정황 정보여서, 기사 가치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그런데 중국 공안 수사책임자의 육성으로 전해진 조희팔 생존 증거는 일파만파로 큰 파장을 남겼다. 대부분의 언론이 KBS를 인용해 보도했다. 더구나 당시는 ‘김광준 검사 사건’으로 조희팔 비호 유착세력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던 때여서 피해자들도 ‘조희팔을 검거하라’는 민원을 쏟아냈다. 결국 경찰은 수사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조희팔’사건은 진행형이다
조희팔 사건이 발생한 지도 올해로 벌써 5년 째 접어들었다. 뒤늦은 측면이 있긴 하지만 지난 해 경찰의 은닉 재산 수사로 상당한 피해 보상의 길도 열어 놓았다. 조희팔의 잔여 재산을 횡령하거나 배임행위를 저질러 온 채권단 일부 인사에 대한 검찰의 수사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의 원점 재수사 발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조희팔이 검거됐다는 뉴스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김광준 검사 사건’으로 관심이 컸던 조희팔의 유착 비호세력에 대한 수사도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하고 답보 상태다. 반면 피해자들의 상실감과 분노는 조희팔과 수사기관을 넘어서 우리 사회로 향하고 있다.
취재과정에서 많은 피해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대부분 50-70대 중장년층의 여성들로 평생을 부지런하게 살아온 서민들이 이었다. 흔히 말하는 부동산 투자나 주식 투자와 같은 재테크는 엄두도 못내는 서민들. 그들에겐 그만 한 돈도 없었고, 그런 수완을 부릴 만큼 돈벌이에 밝지도 않았다. 평생 몸을 던져 받은 소득을 아껴가며 쌈짓돈을 마련했다. 그 돈은 자녀의 결혼자금이고 전세금이고 집 한 칸 마련하려고 수십 년 모은 돈이고, 나이 들어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고 살아보겠다며 장롱 한편에 모아 놓은 돈이었다. 그 돈을 더 부풀려 준다는 말에 감쪽같이 속고 말았다. 조희팔 사기단에 그 귀한 돈을 털어 넣고 말았다. 그들의 상실감이 어떠할까?

우리 사회는 그들의 상실감에 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희팔을 빨리 검거해야 한다. 그리고 숨겨 둔 범죄 수익금을 몰수해야 한다. 그래서 일부라도 피해자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조희팔이 남겨 놓은 잔여 재산을 피해자들에게 돌려주지 않고 횡령하거나 배임한 인물들에 대한 처벌도 늦출 수 없다. 사건의 실체도 규명해야 한다. 단군 이래 최대 사기 사건이라는 수식어에서 나타나듯 조희팔 사건은 전국을 무대로 수년에 걸쳐 이뤄진 조직범죄이다. 그 범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호 유착세력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김광준 검사와 대구지역 공무원 몇 명, 말단 경찰관 몇 명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미 피해자들 사이에는 유력 정치인들과 그의 부인, 사법부 고위인사 등의 이름이 나돌고 있다.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우리 사회가 피해자들의 상실감과 분노에 답해야 할 차례다. 조희팔 사건은 피해자들에게만 진행형 일 수 없다.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진행형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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