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왜 언론사 노조를 흔드나

MBC발 '산별 탈퇴' 논란 정부여당도 두둔…'공정보도·노조 무력화' 우려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지 43주년을 눈앞에 둔 한국 노동계의 오늘은 험난하다. 6만 명의 조합원이 소속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법외노조’로 규정되고 공무원노조도 정부여당이 제기한 대선개입 주장으로 위협받고 있다. 말로만 떠돌던 삼성의 ‘무노조 전략’ 문건이 실제 공개되면서 노동계의 척박한 현실은 재확인되고 있다. 언론사 노조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MBC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산별 탈퇴 등의 논란들은 앞으로 순탄치 않은 언론사 노사관계를 예고한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김종국 MBC 사장이 ‘상급단체의 정치편향성’을 주장하며 노조와의 단체협상을 사실상 거부해 파장을 일으킨 가운데, 여당 국회의원과 방송통신위원장은 이를 두둔하는 발언으로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정권 차원의 ‘노조 무력화’ 기도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경재 방통위원장은 지난 1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확인국감에 출석해 “노조가 어떤 특정한 정치세력이나 정치적인 성향의 (상급)노조에 소속돼 있으면서 공정방송을 논의할 자격이 없다”며 김종국 사장의 주장에 사실상 동조의 뜻을 피력했다. 이 위원장은 “노조의 기본 설립 취지는 노동자의 복지 증진”이라며 “정부나 정권에서 방송에 관여할 수 없듯이 특정 정치를 지향하는 노조가 공정방송이란 이름으로 개입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김 사장 편을 들었다. 조해진 의원은 지난달 29일 방송문화진흥회 국정감사에서 산별 탈퇴가 단협 체결 조건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내면서도 “언론노조가 강령과 규약에서 공개적으로 특정 정파에 치우진 정치 활동을 천명했기 때문에 여기 소속된 MBC노조의 정치적 중립성을 믿을 수 없으므로 보도의 공정성을 논의할 수 없다는 사장의 발언은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MBC 업무보고 자리에서도 새누리당 의원들은 노골적으로 김 사장을 감싸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새누리당 한 의원은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며 격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 의원들과 방통위원장의 ‘지지’ 발언이 이어지면서 김종국 사장의 단협 거부는 힘을 받는 모양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MBC노조)에 따르면 “단협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공정방송 관련 논의만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던 김 사장은 이경재 위원장 발언 이후 “사실상 언론노조를 탈퇴하란 얘기”라는 뜻을 감추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MBC노조는 지난달 28일 김종국 사장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고소했다. 공정방송 조항이 노조의 근간인 만큼 이에 대한 논의를 배제하겠다는 것은 단협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민주노총 법률원의 신인수 변호사도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로 다툼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종국 사장은 입장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노사 관계는 기약 없는 소강상태에 들어간 상태다. MBC노조 관계자는 “내년 사장 선임 이전에 단협이 재개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며 “김 사장 입장에선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법적인 판단 여부를 떠나 이 문제를 계속 갖고 가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조와 대립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내년 3월 재선임 국면에서 방문진 여당 쪽 이사들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역MBC 상여금 체불, 전파료 재협상 등으로 서울 본사와 지역 간의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 것 또한 ‘노조 와해’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언론계에서는 문제가 MBC에서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MBC 총파업을 전후해 김재철 전 사장이 들고 나온 ‘공정방송감시기구 무력화’ ‘대체인력 투입’ ‘해고 및 대량 징계’ ‘노조에 대한 무차별 손해배상 소송’ 등이 타사에서 ‘벤치마킹’된 전례도 있다. 실제 한국일보는 지난 6월 편집국 폐쇄 사태 당시 대체인력 채용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MBC가 향후 언론사 노사관계 정립에 악영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KBS에선 이명박 정부 시절 이뤄진 노조법 개정으로 교섭창구가 단일화 된 이후 공정방송위원회가 파행되는 일이 빈발하고 있으며, 제작 자율성 침해와 부당 인사 조치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노사 관계가 더욱 냉각되면서 “김인규 전 사장 시절보다 더 하다”는 하소연도 나오고 있다.

SBS도 사측이 신입사원 연봉제 실시, 간부급 연봉제 확대 방침과 임금피크제 도입 등 임금제도 대개편을 재천명하면서 긴장감이 돌고 있다.

언론노조는 이경재 위원장과 새누리당 의원의 발언 등을 단순히 MBC노조를 겨냥하는 것을 넘어선 언론노조 전반에 대한 무력화 기도로 규정하고 엄중 경고에 나섰다. 언론노조는 4일 성명에서 “노조를 무력화시켜 그 알량한 자리 하나 보존하려고 하거나 장악된 언론의 혜택을 더 오랫동안 챙기려는 정치적 의도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김현석 위원장은 “공정방송 추구는 언론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것”이라며 “공정방송을 위한 노조의 노력이 정파성으로 폄훼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언론노조 한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에서 노조법 개악으로 ‘노조 길들이기’를 완성했다면, 최근 전교조 법외노조 논란에서 보듯이 박근혜 정부는 노조를 와해시키거나 무릎 꿇리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 것 같다”며 “건강한 언론 노동자들을 위협하며 언론노조를 식물조직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즉각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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