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어내기'라는 권력의 닮은꼴
[글로벌 리포트 | 중국]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11.13 14:4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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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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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중순 세계의 이목이 중국에 쏠리는 한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 공안이 광둥성의 유력지 ‘신콰이빠오(新快報)’의 탐사 전문기자를 전격 체포했는데, 이를 이 신문이 1면에서 정면 비판하며 ‘기자를 석방하라’는 기사를 실었기 때문이다.
공안의 체포 이유는 ‘기업 이미지 실추죄’. 신콰이빠오의 천융저우(陳永洲) 기자가 대형 국유 건설장비 업체인 중롄중커(中聯重科)의 재무비리 의혹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는데 이것이 허위여서 이 회사 주가를 떨어트리는 등 기업 이미지를 실추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신콰이빠오는 이틀 연속 1면에 자사 기자 체포를 비판하며 석방을 촉구했다. 여론도 신콰이빠오의 주장에 우호적으로 움직였다. 공갈죄나 뇌물수수죄가 아닌 ‘기업 이미지 실추죄’를 언론에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적 반응이 당 기관지 ‘신화 통신’ 에서까지 이어졌고, 중국기자협회도 사건 조사에 나서는 등 마치 신년사설을 당선전부가 개입해 핵심을 바꿔쳐 기자들의 파업을 초래한 연초 ‘남방 주말 사태’가 재연되는 양상이었다.
그런데 정작 더 놀라운 일은 그 뒤에 이어졌다. 당사자인 천융저우 기자가 ‘자신의 모든 죄’를, 그것도 ‘자신의 입’을 통해 ‘실토’하고 나선 것이다. 중국 중앙TV(CCTV)에 수갑을 찬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50만위안의 돈을 받고 건네받은 기사를 그대로 기사화했고 자신이 직접 쓴 기사는 하나도 없다”며 그야말로 “100%가 거짓”이라고 ‘죄를 고백’했다.
그 누구도 아닌 당사자의 실토에 사태는 급반전됐다. 언론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사이비 언론’의 문제가 된 것이다. 신콰이빠오는 사과문을 실었고 사장 겸 총편집인, 부총편집인은 짐을 싸야 했으며 당국은 ‘신콰이빠오를 전면 정비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등 기세등등했다.
그러나 문제가 된 고발 기사가 2012년 9월부터 1년 가까이에 걸쳐 지속적으로 게재된 점, 사태 직후 신콰이빠오의 고위인사가 “기사 내용을 다시 점검해 봤으나 객관적이었고, 직업윤리와 법률을 위반한 내용을 찾지 못했다”고 한 점 등으로 미뤄볼 때 극적인 반전에 불구하고 ‘강요된 자백은 아니었나’하는 의문점은 여전하다. 특히 시진핑 체제 10년을 가름한다는 18차 당대회 ‘3중전회’를 앞두고 이어진 유명 블로거들에 대한 검거 선풍과 이를 통한 여론 통제 움직임은 이런 의혹을 가중시키고 있다.
1200만명이 넘는 팔로워를 거느리며 영향력을 발휘해 온 미국 국적의 화교 쉐만즈(薛蠻子). 날카로운 사회비판으로 각광받아온 그가 8월말 파렴치한 ‘성매매 사범’으로 체포됐다. 그 역시 중앙TV(CCTV)에 나와 성매매 사실을 ‘구체적으로’ 인정하고 “마치 황제가 된 듯한 착각에 살았다”며 자신의 삶을 후회했다.
이후에도 유명 블로거와 기자들이 유언비어 유포죄, 사기협박, 공갈죄 등의 혐의로 줄줄이 구속됐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정치, 경제, 사회, 환경 분야 등에서 비판적인 글을 써온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들 중 일부는 ‘글을 통한 돈장사’를 해 온 사람도 없지는 않겠으나 문제는 ‘이들의 글’보다는 ‘이들의 행실’을 뒷조사해 그 치부를 이유로 잡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비판적 인터넷 논객들과 탐사 고발 기자들을 시범적으로 ‘찍어내기’해 언론을 통제하려 한다는 의심이 나올 수밖에 없다. 또한 이 같은 인터넷 논객 검거 선풍이 8월에 있었던 시진핑 주석의 “새로운 매체의 마당을 장악하기 위해 강력한 인터넷 부대를 만들라”는 지시 이후 휘몰아치고 있다는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의 이런 논객 ‘찍어내기’가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유명 블로거이자 작가로 알려진 하오췬은 검거 선풍이 한창이던 지난 10월 15일자 뉴욕타임스(NYT)에 올린 칼럼에서 검거 선풍 사태를 1950년대 비판적 지식인들을 ‘우파’로 매도해 탄압한 ‘반우파 운동’에 빗대 ‘인터넷 반우파 운동’이라고 비판하며 하지만 “당시는 지식인들이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고립돼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중국의 변화를 위해선 희생이 불가피하며 자신을 비롯한 많은 블로거들은 이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고 당국에 맞서고 나섰다. 단속이 강화될수록 반발도 더욱 거세지고 논쟁이 확산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 한국에서 계속되고 있는 ‘찍어내기’ 논쟁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발견된다. 중국에서는 ‘인터넷 논객’을 찍어내기하고 있으나, 한국에선 ‘상식적인 검찰’이 찍혀나가고 있다는 점이 조금 다를 뿐 이들이 현 체제, 현재의 권력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들이란 점에선 공통적이다. “강력한 인터넷 부대를 만들어 매체의 마당을 장악하라”는 한국 국가최고 정보기관의 ‘앞선 지시’를 중국이 뒤늦게나마 배운 셈인가?
한·중 양국의 ‘찍어내기’ 경쟁에선 ‘동아시아 체제’의 특징과 한계가 함께 발견된다. ‘권력의 분산’보다는 ‘권력의 집중’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국가 시스템을 운용할 수 있다고 믿는 이른바 ‘동아시아 체제’는 뒤늦은 산업화를 급속하게 상승시키는 동력을 제공하기도 했지만 민주주의의 진전을 억제하는 제어장치가 되곤 했다. 특히나 ‘권력의 1인 집중’ 현상이 강화되면 민주주의는 더욱 질식해왔다는 게 이 지역 역사가 증거하는 ‘현실’이다.
‘개혁과 개방’,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한·중 두나라가 내세우는 가치가 새로운 권력의 출범과 함께 오히려 흔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