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도 노동자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13일은 전태일 열사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절규하며 스러져간 날이다. 43년이 흘렀건만 대한민국의 노동현실은 여전히 열악하다.

충남 천안 삼성전자서비스센터 수리기사 최종범씨가 목숨을 끊었고 전기기사로 일하며 아내와 두 아들을 미국으로 보낸 한 ‘기러기아빠’가 유학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유서를 남기고 숨졌다는 슬픈 소식도 들려온다.

어느 때보다 노동자의 단결된 힘이 절실한 시점이지만 전교조, 공무원 노조 탄압으로 이어지는 박근혜 정부의 노조 무력화 기도 앞에 노동운동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자본과 경쟁 논리 앞에서 갈수록 위축되는 노동자들의 삶을 응시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언론의 노동보도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척박한 노동 실태와 구조적 모순에 주목하기보다 자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데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지는 않은가. 대선 부정선거 의혹의 시시비비를 가리고 정권의 맹성을 촉구해야 할 방송이 대통령의 해외순방 스케치와 패션, 현지어 연설 등 가십거리에 더 요란을 떨고 있는 건 아닌가.

기자도 노동자다. 기자들이 대한민국 노동의 현주소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외면한다면 침묵의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어느 노동자가 기자들에 연대의 손을 내밀 것인가. 자본과 경쟁 논리 앞에서 언론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기자들의 업무는 갈수록 늘어나고 노동시간은 길어져만 간다. 기자들은 스스로 ‘기사 제조기나 마찬가지’라고 푸념을 늘어놓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신세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기자를 포함한 언론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할 수 있는 노동조합의 역할이 절실하지만 노동운동의 입지는 하루가 다르게 축소되고 있다. 언론계에서도 노조를 흔들기 위한 자본과 정권의 시도가 은밀하고 정교한 방법으로 이미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 활동에 적극적인 기자들은 해고하거나 한직으로 발령 내는 반면 고분고분 말 잘 듣는 기자들은 주요 보직에 전진 배치시키는 방법으로 노동자들간 균열을 조장하는 게 대표적이다. 심지어 한 방송사는 단체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상급단체 탈퇴’를 종용하는가 하면 서울과 지방 근무 노동자들 간 갈등을 부추기며 노동조합의 결속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정권과 자본은 노조를 와해시켜야 노동계 전체를 무력화할 수 있다고 보고 향후 더 집요한 공세를 펼칠 공산이 크다.

기본적으로 노동자는 약자다. 노동자들의 단결이 필요한 건 이 때문이다. 부도덕한 사주를 몰아낸 한국일보 기자들의 투쟁은 많은 것을 일깨운다. 편집국 봉쇄 조치와 사측 편에 선 소수 기자들과 간부들의 신문 제작, 경력기자 모집 공고 등 경영진의 노조 와해 공작에 맞서 한 명의 이탈자도 없이 똘똘 뭉쳐 싸웠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

기자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민주주의 파괴 중단’ ‘노동탄압 분쇄’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을 외치는 전국 노동자들의 함성은 단지 그들만의 목소리가 아니다. 국정원 사건을 희석시켜보겠다는 의도로 자행되는 공안몰이의 실체를 제대로 드러내기는커녕 검찰·정치권의 행태에 편승해 마녀사냥에 골몰한다면 땅에 떨어진 국민 신뢰는 고스란히 부메랑이 돼 언론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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