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외교정책에는 지도가 없다
[글로벌 리포트 | 미국] 이태규 한국일보 워싱턴특파원
이태규 한국일보 워싱턴특파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11.20 14: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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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규 한국일보 워싱턴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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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가 북한이 연말 또는 연초에 핵실험 또는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솔깃한 얘기였지만 이 전문가의 그간 행적과 발언을 되짚어보면 새롭지 않은 또 한 번의 예측에 불과하다는 게 그 말을 들은 이들의 중평이었다.
어느 취재 현장이든 마찬가지겠지만 한반도를 비롯해 지역별, 분야별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즐비한 워싱턴에서 이들이 쏟아내는 말의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특히 미국의 외교정책에 관심이 높은 외국 기자로선 워싱턴의 외교 지도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처럼 미국 외교가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을 때는 더욱 그렇다. 낙태, 총기, 이민법, 건강보험개혁 같은 국내 현안에 대한 찬반을 놓고 진보, 보수를 구분하는 건 가능하지만, 외교정책에서는 사안별로 융합(컨버전스)이 흔하게 일어나 진보, 보수의 색깔을 짐작하기 어려운 게 워싱턴의 현실이다. 과거처럼 세계를 바꾸려는 장기 전략을 마련하는 것은 보수나 진보 진영 모두에서 철 지난 유행 취급을 받는다. 진보 진영은 대학살과 같은 인류애적 사건을 중단시키는 데, 보수진영은 세계를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더 안전하게 만드는 데 별 관심이 없다.
정치인들의 입을 따라가다 보면 외교정책의 갈피를 잡기란 더 힘들어진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군사개입에 무관심한 것은 보수적인 랜드 폴 공화당 상원의원이 이에 반대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공화당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개입주의는 진보적인 사만다 파워 유엔주재 미국대사의 논리와 어긋나지 않는다. 국방비 삭감에는 오바마 대통령과 폴 의원, 보수 유권자운동 티파티의 상당수, 심지어 국방비를 신성시해온 네오콘(신보수주의) 일부도 동조한다. 또 보수적 자유주의자들과 진보진영은 오바마 정부의 무인공격기(드론)정책과 도감청 정책에 한 목소리로 반대한다. 반면 안보 보수주의자들은 그것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정책이기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을 지지한다.
개인적으로는 헤리티지 재단의 킴 홈즈 연구원이 최근 소개한 외교 지형도가 워싱턴에서 길을 잃지 않는 데 유용해 보인다. 그는 크게 세가지로 우선 분류하고 있는데 첫째가 풀백(pullback)으로 불리는 세계에서 물러서기, 세계에서 미군 주둔을 줄이는 후퇴 전략이다. 지금까지 미국 외교가 지나치게 군사 위주라는 데 대한 반성이다. 저명 정치학자인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배리 포젠, 시카고대의 존 미어샤이머, 보스턴대의 앤드루 바체비치, 정치권에선 바니 프랭크 전 민주당 하원의원, 론 폴 전 공화당 하원의원이 대표적이다. 싱크탱크에선 미국진보정책연구소(PPI)와 보수적인 카토(CATO)연구소가 이에 속한다. 이들은 흔히 고립주의라는 비판을 받지만 미군의 완전 철수보다는 해외 군사활동을 극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 강하다.
두 번째는 축소(retrench)전략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가 이에 근접해 있다. 미국의 힘이 점차 제한되고 따라서 국제 개입을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제사회에 미국의 이상주의에 대해 립 서비스를 하되 실제에선 실용주의적으로 접근하며 국내 문제에 치중한다. 그가 말로는 미국의 세계에 대한 관여, 테러와의 전쟁, 심지어 미국 일방주의를 강조하지만 그의 관심은 국내정책, 미국 재건에 가 있다.
세 번째는 개입주의를 주장하는 네오콘의 보수 매파적 시각이다. 이들은 미국이 세계 개입을 힘의 상징으로 해석하고, 종종 도덕적 색채로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시킨다.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다수 학자들, 위클리 스탠더드에 글을 쓰는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킴스 연구원은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의 중동전문가 파우드 아자미, 미국외교협회(CFR)의 국방전문가 막스 부트, 그리고 공화당 소속의 존 매케인과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까지 네오콘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세 전략 모두 약점이 있는데, 네오콘은 공화당에서조차 지배적 당론이 되지 못한다. 공화당 주류는 내치에 더 관심이 높고 군사적 개입에 회의적이다. 풀백 전략은 진보진영, 언론과 학계에서 목소리가 높으나 오바마 정부나 워싱턴의 진보 진영 분위기까지 장악하진 못했다.
이런 틈에 진보, 보수를 아우르는 새로운 조류가 출현하고 있는데 리차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 등이 속한 현실주의다. 보수적 현실주의 성향의 미국이익센터(CNI)는 리처드 닉슨,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절제된 외교정책을 높이 평가한다. 언론인 파리드 자카리아, 조지타운대 찰스 쿱찬 교수로 대표되는 진보적 현실주의 역시 미국의 절제된 역할을 원하며 오바마 대통령의 축소전략을 지지한다.
그러나 이런 외교 조류들은 이전처럼 장기 관점을 유지하거나 그 논리가 확고하지 않아 유효기간이 짧다는 데 문제가 있다. 워싱턴 발 기사를 쓰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