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러운 방송정책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지난 14일 미래부 등이 연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 토론회’는 국내 방송정책에 대한 각계의 입장이 이해관계별로 얼마나 치열하게 갈려져 있는 지를 보여줬다.

“전통적인 공익성 중심의 규제 완화를 통한 방송 산업의 활성화”를 내건 ‘방송산업발전 계획안’은 그동안 각계에서 제기됐던 규제완화 요구를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는 데 그쳤다. 그중에는 다채널방송(MMS), DCS, 8VSB, UHD, 중간광고, 수신료, 광고규제 등 그동안 업계 간의 이해가 부딪혀 보류상태에 놓였던 각종 정책들이 포함됐다.

계획안이 공개되자마자 저마다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 지상파방송사와 시민단체들은 유료방송에 대한 규제완화가 특혜성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KBS는 “방송산업 발전 종합 계획은 거대 유료 방송 사업자를 위한 점유율 규제 완화와 유료 방송 중심의 UHD 서비스 도입 등 유료 방송에 대한 규제 완화와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 “반면 지상파가 디지털로 전환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상황에서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는 유료 방송의 반발에 막혀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MBC 측도 토론회에서 “지상파에 대한 진흥이나 규제는 상당 부분 빠지고, 8VSB 허용과 UHD 로드맵 추진 등 유료방송 위주의 규제 완화와 진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종편을 소유하고 있는 신문사들은 지상파에 대한 규제 완화를 강력 반대하고 나섰다. 매일경제는 사설을 통해 “종합편성TV가 출범해 정착하는 과정에서 지금도 방송광고 시장 70% 이상을 차지하는 지상파 방송사에 중간광고까지 허용하면 광고 쏠림현상은 더욱 심해진다”고 엄포를 놓았다. TV조선을 소유하고 있는 조선일보의 ‘지상파 한번호 다채널(MMS) 허용땐 신생방송 다 죽어’라는 기사 제목만 봐도 입장이 뚜렷이 드러난다. 유료방송 사이에서도 유료방송 점유율 규제 법제 일원화 방침에서는 IPTV 사업자인 KT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는 등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 때문인지 방송통신위원회는 미래부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 의뢰해 나온 결과일 뿐이라며 평가절하했다. 논란 속에 정부조직개편을 단행한 정부 출범 초기부터 우려됐던 미래부와 방통위의 불협화음이 여전하다는 것을 입증해준 것이다.

혼란의 이유는 명백하다. 박근혜 정부가 이렇다 할 방송 철학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산업으로서의 방송만 부각된다. 공공성, 시청자의 권익 등 방송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간과되는 느낌이다. 방송을 ‘창조경제’의 하위개념으로만 보는 듯하다. 개념조차 모호한 창조경제에 방송이 끼워맞춰지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럴 경우 상충하는 사업자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기는 불가능해진다. 어떤 정책을 펴든 특혜 시비를 지울 수 없다. 그 정치적 후폭풍은 고스란히 현 정권의 몫이자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이미 지상파 재송신을 비롯한 방송사업자 사이의 갈등으로 시청자의 권익은 위협받아왔다. 기존의 분쟁도 해결하지 못한 정부가 ‘규제완화’라는 설익은 화두로 방송계를 아노미 상태로 빠뜨릴 위험성이 엿보인다. 박근혜 정부가 최근 사회 각 분야에서 보여주고 있는 갈등 조정 능력을 보면 더욱 걱정스럽다. 규제 완화라는 미명 아래 신규 채널을 5개나 허용하면서 방송계를 ‘만인의 투쟁상태’로 만든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되밟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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