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와 미디어
[글로벌 리포트 | 일본] 이홍천 게이오대학 교수
이홍천 게이오대학 교수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11.27 16: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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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천 게이오대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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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한·일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양국의 정치지도자들이라고 생각해왔다. 노무현-고이즈미, 이명박-노다, 박근혜-아베로 이어지는 양국의 정치가들이 한·일 관계를 풀기보다는 점점 더 복잡하고 해결 불가능한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야스쿠니를 참배하고, 식민지 침략에 대해서 부정하는 발언을 하는 지도자가 바뀌면 한·일 관계가 변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번번이 기대는 실망으로 바뀐다.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져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한·일 관계는 정치지도자의 개인성향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일까. 외교관계에서 정치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정치지도자 못지 않게 한·일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양국의 언론보도라고 하겠다.
최근들어 일본 언론에 한국 관련 보도가 부쩍 늘었다. 신문보다는 특히 방송보도가 두드러진다. 아전인수격 보도나 침소봉대, 과잉반응 뉴스도 드물지 않다. 이전에는 일본의 정치인과 한국의 미디어가 한·일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일본 정치가들이 망언을 하면 한국언론이 이를 대서특필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최근에는 특별한 이슈가 없어도 일본 방송에 한국 관련 내용이 심상찮게 등장한다.
대표적인 예가 채널 6번이 방송하는 아침 프로그램이다. 지난 11월 14일자 보도는 오늘의 키워드로 일본을 소개했다. 한국어를 일본어로 표현하면 ‘이루본’이다. 그런데 설명이 영 이상하다. 친일파를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면서 최근에는 일본을 나타내는 ‘일’자와 마약의 필로폰의 ‘폰’을 합성해서 일본중독을 의미하는 용어로도 사용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대마도 불상 반환 소송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일본제 운동화를 신고 시구식에 참석해 논란이 일고 있다는 뉴스, 한국에서는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북한과 동등한 수준이라는 것, 62%가 일본에 대해서 군사적인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방송했다.
같은 프로그램은 18일에도 한국 관련 특집을 내보냈다. 이날 등장한 키워드는 욱일승천기. 일본 축구대표가 착용하는 유니폼 디자인이 욱일승천기를 연상시킨다며 한국이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욱일승천기 금지법안이 입법 예고중이며 이를 어기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고 소개했다. 이날 프로그램에서는 한국이 다양한 원조설을 주장하면서 욱일승천기도 한국이 원조이고 스시도 한국이 원조라고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스시의 원조가 한국이라고 주장했다는 한국 언론보도는 스시가 한국의 식해와 같은 종류의 음식이라는 내용이었다. 어떤 네티즌이 스시도 한국이 원조라는 내용의 제목을 달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놓은 것은 있었다.
10일에 방송된 한 주말 프로그램은 냉랭해지는 한·일 관계를 특집으로 다뤘다. 한국의 보수단체가 일장기를 태우는 장면에서 리포터가 과도하게 선정적인 멘트를 연발해 집회를 과격하고 위험한 상황으로 묘사했다. 11월 5일에는 성형수술 후유증을 고백한 한국 여배우를 특집으로 다뤘다. 뉴스 프로그램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관련 뉴스는 부정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11월 3일자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일제 운동화를 신고 프로야구 시구식에 참석해 비난을 받았다는 뉴스를, 15일에는 한국 외교부가 독도관련 뉴스에서 일본 NHK의 영상을 무단 사용했다는 뉴스를, 15일에는 한국의 톱 아이돌이 스포츠도박으로 20여명이 구속되었다는 뉴스를, 17일에는 한국자본들이 대마도의 땅을 무차별적으로 사들이고 있어 일본의 안전보장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뉴스를 전했다.
일부 방송은 인터넷만 제대로 찾아보았다면 고칠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언론의 기본은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고 이 때문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여된다. 부정적인 내용을 전달할 경우에는 더더욱 확인작업이 필요하다. 상대방이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일 관계가 어려울수록 보도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과장하거나 아전인수격으로 보도하는 것은 한·일 관계 이전에 언론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자세에서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