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박하기 힘들어지는 '국회 무용론'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편집위원회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12.04 15:40:31
국회 방송공정성특위가 8개월 만에 수명을 다했다. 방송공정성특위는 지난달 28일 마지막 전체회의를 열고 그간의 논의 내용을 담은 보고서와 해직언론인 관련 결의문을 채택했다. 여야는 △KBS·EBS 이사 및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위원 결격사유 강화 △KBS 사장 인사청문회 제도 도입 △보도·제작·편성의 자율권 보장을 위한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 설치 등에 대해 의견 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 합의로 해직언론인 복직 촉구 결의문이 채택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그동안 새누리당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비해 이 정도 진전이 있었다는 점은 그나마 평가할 만한 구석이다. 하지만 선언적 결의문이 실제 MBC YTN 등 해당 언론사에 어느 정도 구속력을 발휘할 지는 미지수다. 해직언론인의 복직을 지연시키고 있는 언론사 경영진들은 여야 합의를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야당과 언론단체들이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 강력하게 주장했던 공영방송 사장 선출 ‘특별다수제’는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특별다수제는 공영방송 사장을 선임할 때 이사회 의결정족수를 3분의 2 이상으로 강화하는 제도다. 특별다수제가 도입된다면 한 정파의 독단으로 사장을 선임할 수 없는 최소한의 효과가 기대됐다. 그동안 공영방송사를 파행으로 몰고갔던 사장 선임 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였던 셈이다. 집권세력의 프리미엄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소수의 동의구조를 마련하는 합리적 방안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여야가 추천한 교수들로 구성된 자문단에서조차 도입을 권고한 특별다수제가 좌절된 데는 새누리당의 책임이 크다. 특히 여당의 특별다수제 거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몇 안되는 미디어 관련 공약이었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집권당이 스스로 걷어찬 것과 마찬가지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앞으로 미디어 현안에서 ‘국회 무용론’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난 이명박 정부 시절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의 악몽도 떠올리게 된다. 미디어위는 미디어법을 반대하는 언론노조의 총파업 등 언론인들의 결사적인 저항 끝에 2009년 3월 여야 합의로 출범했다. 하지만 100일간의 활동에도 최종 합의안 도출에 실패했고 미디어법은 결국 7월 날치기 통과됐다.
미디어위와 방송공정성특위는 태동에서 종말까지 비슷한 경로를 걸었다. 미디어위는 이명박 정부가 신문방송 겸영 등 쟁점 조항을 담은 미디어법을 강행할 기세를 보이자 한국기자협회를 비롯한 언론단체와 학계, 정치권이 사회적 합의를 통한 법 제정을 제안하면서 이뤄진 것이다. 방송공정성특위 역시 정부조직개편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사회적 합의를 거쳐 해결해보자는 ‘소통 정신’에서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합리적 제안의 산물이었던 위원회는 여권의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와 야권의 무기력에 유명무실해졌다.
언론계는 1999년 방송개혁위원회와 노무현 정부 말기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 등을 통해 충돌하는 미디어 현안에 대한 사회적 공론장 조성을 시도한 바 있다. 한계 속에서도 도출됐던 결론들은 이후 정권 교체 과정에서 왜곡되고 변형돼 오늘에 이르렀다. 토론과 조정이 쓸모없어지면 공멸을 부르는 무한 대립이 불가피할 뿐이다. 이번 방송공정성특위의 미진한 성과를 이어받을 국회가 계속해서 무책임한 모습을 보인다면 민주주의 자체의 위기가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