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학년도 수능시험 세계지리 출제오류

제279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1 / 경향신문 곽희양 기자


   
 
  ▲ 경향신문 곽희양 기자  
 
수험생들에게 미안합니다. 수상의 기쁨은 이보다 서너 걸음 뒤에 있습니다.
‘평균수준의 수험생이라면 정답을 택하는데 큰 무리가 없다’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사법부의 판단에 대해 일부 수험생들은 되묻습니다. “평균 수준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서 이 문항을 틀렸다면, 이는 불공정하지 않나요?”

유럽연합과 북미자유무역협정 회원국의 총생산액이 어느 쪽이 큰가 하는 것이 쟁점입니다. 교과서와 EBS수능연계교재, 지난 9월 모의평가는 똑같은 문항의 지도에 ‘(2009)’라고 표기했고, 이번 수능에서는 ‘(2012)’로 표시했습니다. ‘기존 문항을 한 번 더 꼬아서 출제하지 않았을까’라는 합리적 의심을 가지고 문제를 풀었던 수험생들이 억울해하는 이유입니다.

평가원과 사법부는 현실과 다른 답을 택했습니다. 교육과정의 안정성을 위한 선택이겠지만, 이는 평가원이 그간 주장해오던 것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수험생들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교과서의 ‘죽은 지식’을 진리인양 받아들일 수 있는 안 좋은 선례를 만들었습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출제관계자들은 대부분 말을 꺼렸습니다. “내가 하는 말이 칼이 될 수 있다”며 인터뷰를 거절한 출제관계자에게 기자들은 “그 칼이 수험생에게 향하는 것은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시느냐”고 되물었습니다. 또 다른 출제관계자는 “나도 오류가 있는 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평가원의 입장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이들이 교육자로서 마음에 안고 살아가야 하는 ‘짐’을 걱정하는 것은 기자의 오지랖일지도 모릅니다.

이 때문에 오류 논란이 일어난 배경과 그 대책에 대한 교육당국의 논의가 필요합니다. 출제·검토진의 ‘단순 실수’ 때문인지, EBS수능연계에 대한 과신 때문인지, 아니면 20년 가까이 지속된 수능체제의 한계 때문인지 등을 살펴야 합니다.

또 출제·검토진의 선발과 운용과정, 외부 자문의 객관적인 운영 등도 되짚어야 합니다. 교육당국이 아무 대책도 내놓지 않는 지금의 모습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 분명합니다.

어떤 사회든, 시대를 지배하는 무의식적인 체계가 있습니다. 우리시대에는 ‘더 노력한 자가 더 많은 이익을 얻는다’는 믿음이 그 중 하나입니다.

수험생들에게 미안한 이유는 이 믿음을 지켜주지 못해서입니다. ‘이달의 기자상’ 수상이 그네들에게 위로가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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