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싱크탱크 올해 화두는 중동·아프리카

[글로벌 리포트 | 미국] 이태규 한국일보 워싱턴특파원


   
 
  ▲ 이태규 한국일보 워싱턴특파원  
 
미국 워싱턴의 싱크탱크들이 연초에 갖는 행사를 보면 미국의 신년 화두를 짐작할 수 있다. 비록 민간기구이나 이 나라를 이끄는 최고 두뇌집단이 미국의 싱크탱크다. 이들은 많을 때는 하루에만 서너 차례 언론의 주목을 받는 포럼, 토론회를 연다. 과거 또는 미래 정책 결정자들로 구성된 이들이 제시하는 시각은 정책 연관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거의 2주 만인 이번 주 본격적으로 시작된 싱크탱크들의 연초 행사만 보면 미국 주요 현안에서 아시아태평양 문제는 다소 멀어진 모습이다.

브루킹스연구소는 미래 에너지교역, 인도주의적 위기대응, 아프리카 문제를 신년 첫 행사로 내놨다. 미국 에너지부는 자국 내 원유생산이 2019년에 2008년의 두 배인 하루 960만 배럴에 달한다고 예상한다. 또 셰일가스 혁명으로 미국은 2018년부터 세계 에너지 최대 소비국가에서 수출국가로 바뀔 수 있다. 중동 에너지 의존도가 떨어지면서 미국의 외교정책은 한결 원유에서, 또 중동에서 자유로워지게 된다. 중동에 힘의 공백이 생기며 다시 시끄러워지는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 외교정책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미국외교협회(CFR)는 2014년 예상되는 국제위기를 첫 행사 주제로 잡았다. CFR의 제임스 린지 부회장은 버락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도 불구하고 중동이 올해 정책의 우선순위를 차지할 걸로 봤다. 이란 핵 협상을 비롯해 시리아사태, 중동 평화협상, 알 카에다 세력확장 등 미국의 중동 현안은 올해도 아시아 문제보다 비중이 무겁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역할 등을 논의한다. 중국, 러시아는 NATO와 미군이 아프간에서 나가면 불똥이 자신들에게 튀어 자국 내 분리주의 움직임이 자극 받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해외 특파원들이 몰려 있는 워싱턴의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선 미 육군참모총장 레이 오디어노가 육군의 미래를 설명한다. 10년 넘게 테러와의 전쟁을 주도해온 육군은 이라크에 이어 올해 아프간에서 미군이 철수하면 위상축소가 불가피하다. 이미 2017년까지 현재 54만 병력을 49만명으로 감축하기로 한 상태다. 육군은 대책으로 아시아에서 역할 확대를 꾀하고 있는데, 그것이 아시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가 관심이다.

우드로윌슨센터의 첫 행사는 글로벌화와 미국의 무역협정 등 경제 문제다. 현재 미국은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과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을 적극 추진 중이다. 두 협정이 체결되면 국제 무역환경은 근본부터 바뀌는데 미 의회 비준 과정에서 찬반 논란이 거셀 조짐이다. 의회에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미국에 불리한 대표적 경제협정이란 분위기도 있다. 스팀슨센터는 이번에 국제 야생동물 밀렵 및 교역 문제를 다룬다. 야생동물 교역이 기업형 국제범죄로 확대되며, 테러조직의 자금줄이 되고 있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보수적인 헤리티지재단은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개혁법과 낙태 등 주로 국내 이슈를, 신보수주의(네오콘) 거점인 미국기업연구소(AEI)는 이란 문제를 새해 첫 토론 주제로 정했다. 11월 미 중간선거를 앞두고 벌써부터 반 오바마 이슈를 확산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밖에 미국 연구기관들에선 한국에서 120년 전 갑오년과 2014년을 비교하듯 100년 전인 1914년과 올해를 비교하는 게 유행이다. 평화에 안주하다 세계대전을 겪은 한 세기 전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된다는 뜻일 것이다. 1914년 새해는 평화 시대에 대한 믿음으로 시작했다. 평화주의자로 변신한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세계가 국제법에 의해 분쟁을 해결할 수 있게 됐다며, 평화임무 완수를 선언하기까지 했다. 그 시기 최고 베스트셀러는 강대국들이 경제적으로 상호의존하면서, 과거처럼 전쟁으로 국익을 추구하는 것은 환상이란 내용의 책 ‘위대한 환상’이었다. 하지만 전쟁 무용론에 대한 그 같은 믿음은 6개월 뒤 사라예보에 울려 퍼진 총성에 깨졌다.

100년 뒤인 지금 강대국 간 전쟁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벨퍼과학국제문제연구소의 그레이엄 앨리슨 소장은 신흥 강국과 기존 패권국이 무력 충돌하는 경향을 지닌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경고하며, 지금이 100년 전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가 지목한 가장 가능성 높은 ‘함정’은 공교롭게 한국과 멀지 않은 곳에서 진행되는 중국과 일본의 동중국해 갈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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