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 '아빠! 어디가?' '빠빠취날(爸爸去哪儿)'과 예능 한류
SBS 송욱 기자 SK펠로 연수기
송욱 SBS 기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1.10 13: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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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판 아빠! 어디가? 빠빠취날.(사진=페이스북 빠빠취날 팬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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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27일 중국 후난위성TV의 오락프로그램인 ‘빠빠취날(爸爸去哪儿)’ 시즌1이 막을 내렸습니다. 한국에서도 화제가 될 정도여서 아시는 분이 많으시겠지만, 이 프로그램은 MBC의 ‘아빠! 어디가?’의 포맷을 수입해 만든 것인데 말 그대로 '대박'을 쳤습니다. 마지막 12회 시청률은 4.9%를 기록했고, 10회 시청률은 무려 5.3%가 나오면서 중국 CCTV의 설날특집방송인 ‘춘완(春晚)’을 제외하고는 지난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5%가 뭐 대수냐"고 하시는 분도 있으시겠지만, 중국은 위성TV가 40개가 넘다 보니 1%만 넘어도 성공이라고 합니다. 이런 인기를 증명하듯 ‘빠빠취날’ 시즌2의 광고입찰에서 중국 유제품 기업인 이리(伊利)가 무려 3억 1199만 위안(우리나라 돈으로 약 543억 원)을 내고 메인 타이틀스폰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시즌1의 계약금액이 2800만 위안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오른 것이죠.
방송을 보면 5명의 다른 직업을 가진 아빠들이 아이들과 여행을 떠난다는 콘셉트와 각종 미션, 재치있는 자막 등은 한국의 ‘아빠! 어디가?’와 똑같습니다. 저는 임지령(제가 학생 때 정말 유명했었습니다)이 나온다는 소식에 보기 시작했는데 임지령의 ‘방부제 피부’도 놀라웠고, 출연하는 아이들이 한국 방송보다 1~2살 더 어리다 보니 하는 짓이 더 귀여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땅덩어리가 커서 그런지 여행지의 스케일이나 자연경관이 더 볼만했습니다.
‘아빠 재발견, 시골, 가족애’ 버무려져 인기 그럼 ‘빠빠취날’의 인기요인은 무엇일까요? 중국 매체들의 분석은 한국 ‘아빠! 어디가?’의 인기요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멀게만 느껴졌던 아빠의 재발견, 도시에 갇혀 있던 아이들이 시골에서 느끼는 자유, 그리고 다양한 상황에서 나오는 가족애와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행동들입니다. 여기에 유명인들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인기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중국인들 얘기를 들어보니 중국에는 그동안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이 거의 없었고, 이혼이나 커다란 스캔들이 아닌 이상 중국 스타들과 그 가족의 사생활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스타들이 수수한 모습으로 자녀와 일상생활을 하는 모습은 중국인들의 이목을 끌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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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페이스북 빠빠취날 팬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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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그램의 포맷 수입으로 성공을 거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같은 후난위성TV가 앞서 MBC의 ‘나는 가수다’를 리메이크한 ‘我是歌手’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M-net ‘슈퍼스타 K’ 등도 중국판으로 다시 제작돼 방영됐습니다. 그리고 지금 쓰촨위성TV에서는 KBS의 ’1박2일‘의 포맷을 가져온 ’兩天一夜‘를 방영 중인데 한국의 강타 씨도 나옵니다. 이런 포맷 수출이 늘어나면서 한국에서 중국으로 날아와 연출하거나 도와주는 ’플라잉PD‘도 많이 늘었다고 합니다. 특히 중국에 공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CJ E&M 같은 경우는 아예 10명이 넘는 PD들을 아예 주재원으로 파견했습니다.
드라마·가수 ‘한류’ 약발 점차 시들해져 그동안 중국에서 ‘한류’의 중심은 한국 드라마와 가수 위주의 한정된 콘텐츠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고 장르도 한정돼 있다 보니 그 ‘약발’도 시들어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오히려 한국 문화가 빠르게 퍼지면서 ‘혐한류’라는 말도 생겨난 지 오랩니다. 실제로 중국 대학생에게 한류를 물어봤더니 “한국 드라마 좋아하기는 했는데 옛날만큼은 아니다. 부모님이야 예의나 가족애를 중시하는 한국의 정서, 다소 자극적이지만 재미있는 스토리 때문에 아직 보시는 것 같은데 젊은 사람들은 트렌디한 드라마 아니면 이제 굳이 찾아보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답하더군요.
이런 상황에서 예능 프로그램의 포맷 수출은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외, 주로 일본의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을 베껴오는 데 급급했던 한국의 콘텐츠 사업이 이제는 드라마 수출에 이어 포맷 수출까지 할 정도로 컸다는 것으로 참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입니다.
중국 당국 외국·오락 프로그램 편성 축소 하지만 걸림돌도 있습니다. 중국의 언론과 출판, 영화, TV 등을 담당하는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이 올해부터 외국 프로그램과 오락 프로그램의 축소를 지시했기 때문입니다. 광전총국은 각 방송사가 ‘외국판권 프로그램을 매년 1개 이상 편성해서는 안 되며, 판권을 산 당해연도부터 오후 7시30분∼오후 10시 사이에는 방송할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이 시간대 외국 프로그램 편성 제한은 5년여 전부터 있었으나 1개 이상 편성 제한은 새로운 조치라고 합니다. 이와 함께 오락프로그램에 대한 통제도 강화됐는데 가수선발 등 오디션 프로그램을 황금시간대(오후 7시30분∼오후 9시30분)에 방송하려면 사전에 광전총국 심사를 거쳐야 하며 이마저도 분기당 한 개로 제한했습니다.
중국도 우리나라처럼 오디션 프로그램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한국뿐 아니라 외국의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 포맷을 수입한 프로그램이 많은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광전총국의 조치는 외국 문화의 무분별한 유입을 막겠다는 의도로 이해는 가는 것이지만, 우리를 비롯한 수출국들은 울상일 수 밖에 없죠.
이와 관련해서 중국에서 문화 콘텐츠 수입과 제작업을 하시는 한 사장님은 “이런 조치들로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나라는 아무래도 한국일 수밖에 없다”며 “사실 외국 프로그램들이 서서히 인기를 얻어갔다면 이 정도까지 엄격하게 하지는 않았을 텐데, 한국 프로그램은 ‘대장금’부터 시작해서 중국판 ‘아내의 유혹’, ‘나는 가수다’ 등 많은 프로그램들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인기를 끌다 보니 중국 정부의 견제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정책이 있다면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 그렇지만 ‘정책이 있다면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는 말이 있죠. 일단 많은 중국 젊은이들은 TV가 아니라 ‘요우쿠(優酷)’ 같은 유명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각종 프로그램을 보고 있어, 해외 방송사들은 이 동영상 사이트들에 직접 프로그램을 팔고 있습니다. 또 중국방송국이 의지만 있다면 포맷이나 내용을 변형시켜서 하는 방법도 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더 바람직한 건 완제품-포맷 수출과 함께 아예 현지화도 병행하는 것이겠죠. 실제로 최근 한국 프로그램의 흥행과 ‘이별계약’ 같은 한중영화의 성공으로 이런 합작이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중국도 문화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막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또 제작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만큼, 우리의 축적된 경험과 창의성이 중국 시장에서의 더 큰 기회를 찾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