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위 '해괴한 심의' 도 넘었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편집위원회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1.29 14:14:10
내일부터 설 연휴가 시작된다. 항상 시간에 쫓긴 기자들도 모처럼 한 숨 돌리게 됐다. 하지만 뉴스를 전해야 할 언론이 스스로 뉴스거리가 되는 현실이 반복되다 보니 가족들과의 명절 대화도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박근혜 대통령 퇴진” 발언을 한 박창신 천주교 전주교구 원로신부를 인터뷰했다는 이유로 CBS 라디오 프로그램 ‘김현정의 뉴스쇼’에 법정제재를 내렸다. 방통심의위의 ‘주의’ 의결은 방송사 재허가 시 감점 요인이 된다고 한다. 방송사를 문 닫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의결을 주도한 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김현정의 뉴스쇼’가 논란의 당사자를 출연시켜 여과없이 방송해 법정제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서 논란의 당사자를 인터뷰하는 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언론의 당연한 의무이다. 논란이 아닌 것만 인터뷰할 바엔 인터뷰 프로그램이 왜 필요하겠는가? 기자나 PD는 논란의 당사자는 물론 강력사건의 피의자에게도 마이크를 내민다. 연쇄살인범을 인터뷰하는 게 그를 두둔해서 하는 것인가.
방통심의위의 해괴한 결정은 벌써 여러 차례 반복돼 왔다. 지난달 19일엔 JTBC의 ‘뉴스9’가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을 출연시켰다는 이유로 ‘관계자 징계 및 경고’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반면 서울시장과 성남시장 등을 ‘종북시장’이라고 표현했다가 수백만원의 배상판결을 받은 정미홍씨를 출연시킨 TV조선 ‘뉴스쇼 판’에 대해선 행정지도에 그쳤다. 정권에 유리한 사안인지 아닌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중잣대를 적용하는 것이다. 방통심의위는 심지어 안철수 의원이 출연했던 MBC 예능프로그램 ‘무릎팍 도사’에 대해 방송이 나간 지 4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징계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정치심의는 CBS 라디오 프로그램 ‘김미화의 여러분’에게 내려진 제재가 무효판결을 받은 것처럼 법원에서 뒤집혀지기 일쑤다. 법정에서 다른 결론이 나더라도 방통심의위 징계는 비판적인 방송을 위축시키고, 친정부 방송에는 마구잡이식 표현을 남발할 면죄부를 주고 있다. 못마땅한 방송이 나오면 친여 성향 인사가 방통심의위에 제소하고, 여당 추천 위원들이 징계를 내리면서 언론을 길들이고 있는 것이다.
방통심의위가 이중잣대의 정치 심의를 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여야 추천 심의위원 수가 6대 3으로 이뤄진 기형적 위원회 구조 때문이다. 야당 추천 위원이 모두 문제없다고 해도 여당 추천 위원들이 표결로 제재를 결정하면 그대로 될 수밖에 없다. 결국 현재 구조에선 여당이 방송을 심의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방송의 공정성 여부를 심의하는 위원을 방송의 감시 대상인 정치권이 정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굳이 그래야만 한다면 당연히 여야동수로 해서 집권 여당의 입김을 줄여야 하고 정치적 간섭을 막기 위한 2중 3중의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당장은 합의제 기관이 정신을 살려 표결로 징계를 남발하는 걸 막아야 한다.
한국기자협회와 한국PD연합회, 전국언론노조 등 언론인 단체는 이제라도 시민사회와 함께 바람직한 방통심의위 구성 방안을 본격 논의해야 한다. 방송인 언론인 스스로 바람직한 심의기관의 모델을 만들어 국회에 법 개정을 요구해야 한다. 정권에 휘둘리지 않는 방송심의, 방송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그런 심의기관이 필요하다. 심의위원의 양심에 호소하기엔 현재 방통심의위는 너무 멀리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