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의 발톱 그리고 역사전쟁

[글로벌 리포트 | 중국]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분노스럽다, 한심하다, 두렵다, 찜찜하다, 불안하다.’ 최근 일본의 역사 도발을 보며 드는 여러 생각들이다. ‘침략의 정의는 정해져 있지 않다’는 역사 부정 발언으로 시작된 아베의 행보는 야스쿠니 참배 강행으로 이어지고, 독도를 일본의 고유영토로 가르치도록 하는 역사 교과서 도발을 통해 분노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21세기 민주주의와 평화 공존의 시대에 세계 경제대국이라는 일본의 정치 수준이, 그들의 역사 안목이 이 정도인가 하는 점에서는 실망스럽다 못해 허탈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불과 백년전 일본 제국주의의 가공할 침략성을 경험했던 우리로선 서서히 날을 세우는 저들의 ‘제국주의 발톱’이 두렵기도 하다. ‘제국주의의 DNA가 숨어 있다’고 하는 게 바로 이런 경우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딱 이런 경우구나 싶게 중국은 일본의 도발을 일본 침략의 역사를 노골적으로 까발려가며 대응하고 있다. 1930년대 만주국 시절 관동군의 만행 현장을 외신을 대동해가며 공개하고, 난징대학살의 참상을 ‘시신처리에만 수개월이 걸렸다’는 내용이 담긴 자극적 문서 공개로 다시 부각시키고 더불어 난징 기념관을 2배로 확장하겠다는 등 그야말로 파상적 공세다.

일본군 위안부 부정에 이은 독도 도발에 우리 정부도 적극적 대응으로 돌아섰다. 한·일 수교의 역사가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최후 통첩성 비판이 정부 공식 성명으로 나오고 군 위안부 문제와 독도 문제를 놓고 국내외적으로 일본을 비판하는 총공세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왠지 찜찜하고 불안하다. 무엇보다 침략의 역사 고발이 중국엔 부담이 적지만 우리에겐 적지 않은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우리 근대사는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굴절된 역사 속에 존재하고 그 엄연한 ‘역사적 현실’이 오늘의 현대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무엇보다 ‘일본 장교 박정희’의 존재는 우리가 역사 전쟁을 어떤 방식으로 끌어가야 하는지 무거운 화두를 던진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한 바로 그 땅에서, 수많은 항일 의병들이 조국 광복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만주벌판에서, 일본군 중위 ‘다카키 마사오’는 중국 공산당 팔로군과 이 지역 항일투사들을 제거하는 게 주 임무였던 관동군에 복무했다.

더욱 찜찜한 것은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을 질타하고 비판하면서도 정작 우리 정부 역시 ‘역사 교과서를 왜곡’하는 데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친일파 문제 축소를 원해 새 교과서를 승인토록 교육부에 압력을 가했다’는 뉴욕타임스 보도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독도가 분쟁지역이라는 등의 일본 우익의 논리를 답습한, 일본의 지배가 한국 근대화의 토대가 됐다는 식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기초로 한 교학사 역사 교과서 승인 과정을 들여다보면 지금의 정부가 역사 교과서를 ‘제 입맛에 맞게’ 바꾸려고 얼마나 궤도를 이탈하고 있는지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이 논란의 핵심에 결국 ‘아버지를 위하여’라는, 박정희 친일 독재 흔적 지우기라는 야합과 충성이 자리하고 있다면 지나친 관측일까? 교육부의 이 ‘반역사적’이고, ‘반역적’으로까지 보이는 이 기괴한 행태가 과연 교육부 공무원들의 독자적 판단에 따른 것일까? 우스갯소리지만 일본 우익들이 교학사와 교육부에 감사장을 주겠다고 나설까봐 겁난다.

일본의 역사왜곡을 이기는 일, 바로 우리 역사를 바로세우는 게 첩경이다. 일본의 역사도발은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타산지석’이다. 역사 문제, 역사학계와 시민사회에 넘기고 정부는 대외적인 역사 전쟁에 슬기롭게 대처하라. 우리의 근대사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 했던 지난 정부들의 숱한 과오를 또다시 재현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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