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女兒一言 重千金'
[스페셜리스트 | 경제]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경제학박사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2.26 15:5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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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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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일언 중천금(男兒一言 重千金)’이라는 옛말이 있다. 남자의 말은 천금처럼 무겁다는 뜻으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함을 이른다. 하지만 여풍(女風)이 거센 요즘 세태를 감안하면, ‘여아(女兒)일언 중천금’이라는 말도 필요할 것 같다. 이미 여성 대통령이 나온 것처럼, 우리사회를 짊어질 여성 정치인이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수많은 남성 정치인들이 숱한 허언으로 국민에게 얼마나 큰 실망을 안겨주었던가?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1년을 맞아 평가가 한창인데, 보는 이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특히 경제민주화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지난 1년반 동안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여아일언 중천금’을 지켰는지 살펴보는 것은 나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2012년 7월10일 대선출마 선언 때 국민행복을 위한 3대 핵심과제로 경제민주화를 제시하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과거에는 국가의 발전이 국민의 행복으로 이어졌지만, 지금은 국가의 성장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의 고리가 끊어졌다. 이제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을 확 바꿔서 국가발전이 국민행복으로 선순환되는 새로운 국가발전의 길을 가겠다.”
대통령은 대선을 한달 앞두고 손수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했다. “지금은 성장의 과실이 일부 계층에 집중되면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성장잠재력을 해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바로잡아야 한다.” 대통령은 경제민주화가 실현된 새로운 대한민국을 묘사했다. “모든 경제주체들이 성장의 결실을 골고루 나누면서, 그들이 스스로 변화의 축을 이루어 조화롭게 함께 커가는 나라를 만들겠다.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고, 균등한 기회와 정당한 보상을 통해 대기업 중심의 경제의 틀을 중소기업, 소상공인, 소비자가 동반발전하는 행복한 경제시스템으로 만들겠다.”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취임식 때도 “경제부흥을 위해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모두 옳은 얘기다. 대통령의 말처럼 경제민주화의 목표는 국민행복, 즉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대통령이 공약한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입 규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해소,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대기업의 불공정행위 근절 등은 대기업을 옥죄거나, 과도한 규제를 남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장의 온기를 온 국민에게 골고루 퍼지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 이를 위해 소수 대기업 중심의 양극화된 경제구조에서 벗어나 국민 모두가 상생할 수 있도록 경제정책운용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말은 집권 이후 180도로 바뀐다. 대통령은 지난해 4월15일 청와대회의에서 “경제민주화 법안 중에 공약이 아닌 것도 포함되어 있다”며 제동을 걸었다. 이어 하반기 최우선 국정과제로 경제활성화를 내세우더니, 7월10일 언론사 간부와 오찬에서는 “경제민주화 중요법안이 7개 정도였는데, 6개가 이번에 통과됐다”며 경제민주화 입법 종결선언을 했다. 8월28일 10대그룹 회장과 만나서는 “정부는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옥죄기나 과도한 규제로 변질되지 않고 본래 취지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사실상 경제민주화 기치를 내렸다. 이후 대통령의 입에서 경제민주화라는 말은 사라졌다.
박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신뢰를 자신의 정치자산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의 언행은 ‘여아일언 중천금’을 지키지 않은 대표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이는 앞으로 우리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여성 예비 정치인들에게는 경계해야 할 본보기가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은 2월25일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담화문에서 “2017년에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4%대로 끌어올리고, 고용률 70%를 달성하며, 1인당 국민소득은 4만달러 시대로 가는 초석을 다지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자신의 말까지 뒤집은 대통령의 말을 국민이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