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카니발 축제, 월드컵 그리고 대통령 선거
[글로벌 리포트 | 남미]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3.04 10:5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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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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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최대 규모의 종합예술로 일컬어지는 브라질 카니발 축제가 올해도 어김없이 화려한 무대를 연출했다. 2월28일 밤부터 시작된 카니발 축제는 3월5일 새벽까지 쉼 없이 열기를 뿜어냈고, 남미대륙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브라질은 삼바의 향연에 흠뻑 취했다.
카니발 축제는 전국에서 벌어졌다. 그중에서도 남동부 상파울루 시와 리우데자네이루 시, 북동부 살바도르 시와 헤시페/올린다 시의 축제가 4대 빅 이벤트의 명성을 유감없이 확인했다.
중남미 제1의 경제도시 상파울루와 세계 3대 아름다운 항구도시 중 하나인 리우의 삼보드로모(Sambodromo·삼바 전용 경기장)에서는 거대하고 역동적인 퍼레이드가 선보였다. ‘브라질 속의 아프리카’로 일컬어지는 살바도르와 유네스코 지정 세계역사유적지구인 헤시페/올린다에서는 아름다운 대서양 해안을 배경으로 차별화된 축제 분위기가 눈길을 끌었다.
사순절(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교회 절기)을 앞두고 열리는 카니발 축제는 유럽으로부터 전해진 가톨릭의 전통적인 종교 의식에 아프리카에서 유래한 타악기 연주와 열정적 춤이 합쳐져 생겨났다.
브라질 최초의 카니발 축제는 1723년 리우에서 열렸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카니발 축제가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엽부터라고 한다. 카니발 축제는 20세기 들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브라질의 대표적인 문화 아이콘으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카니발 축제가 지나친 상업화와 삼바스쿨 간의 과다 경쟁이 겹치면서 갈수록 타락하고 있다는 비난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기득권층과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볼거리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카니발 축제 기간 늘어나는 무분별한 성 접촉은 또 다른 문제로 지적된다. 브라질 보건부는 올해 카니발 축제 기간에 1억개의 콘돔을 무료로 나눠주었다. 보건부 자료를 기준으로 브라질의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자는 34만명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유엔에이즈계획(UNAIDS)은 HIV 감염자 수가 실제로는 50만명을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16만명 가량은 HIV 감염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비난과 비판을 충분히 고려하더라도 카니발 축제가 상당히 매력적인 문화 현상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브라질 국민은 카니발 축제를 통해 농축된 에너지를 한꺼번에 터뜨린다. 삶에 지친 사람은 물론이고 가진 자, 있는 자 모두 삼바리듬에 몸을 맡기며 동질감을 확인한다. 카니발 축제는 다민족·다문화를 특징으로 하는 브라질 사회의 공통점을 찾아내는 용광로 역할도 한다.
2012년에 상파울루, 2013년에는 리우의 삼보드로모에서 카니발 퍼레이드를 지켜본 적이 있다. TV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압도적인 규모와 열정이 놀라웠다. 4천~5천명이 한 팀을 이룬 대규모 퍼레이드 행렬에 관중들은 환호했고 하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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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스타 싸이는 지난해 브라질 북동부 바이아 주의 살바도르에서 펼쳐진 카니발 축제의 개막 무대를 장식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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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상파울루 삼보드로모에서는 브라질 한인이민 50주년(2013년)을 기념해 80명으로 이루어진 한국 공연팀이 특별초청 형식으로 참가했다. 브라질 카니발 축제 퍼레이드에 한국 공연팀이 참가한 것은 처음이었다.
2013년에는 상파울루와 리우의 삼바스쿨이 한국을 테마로 퍼레이드 행렬을 꾸몄다. 살바도르에서는 월드스타 싸이가 무대에 올라 글로벌 히트곡 ‘강남스타일’을 불러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수만명의 카니발 축제 참가자들이 ‘강남스타일’의 리듬에 맞춰 일제히 말춤을 따라 추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한류는 브라질 카니발에서도 통했다.
올해 카니발 축제는 2014 월드컵 축구대회를 앞두고 열렸다는 점에서 브라질에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2014 월드컵은 1950년 이후 64년 만에 브라질에서 열리는 대회다. 브라질은 월드컵 통산 5회 우승국이지만, 자국에서는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했다. 1950년 월드컵 때는 결승전에서 우루과이에 패해 우승컵을 내주었다.
상파울루와 리우의 카니발 축제 퍼레이드에서는 2014 월드컵이 가장 인기 있는 테마였다. 퍼레이드에 동원된 차량과 삼바댄서들의 의상은 월드컵 트로피와 마스코트, 축구공 등으로 장식됐다. 퍼레이드의 주제를 2014 월드컵으로 정한 삼바 스쿨도 있었다. 월드컵 우승을 바라는 국민의 기대가 카니발 축제 현장에서 압축적으로 표현된 셈이다. 카니발 축제가 끝난 날이 ‘월드컵 D-100’이었다는 점도 묘한 우연의 일치다.
브라질에서는 요즘 카니발 축제와 월드컵을 오는 10월 대통령 선거와 연결시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카니발 축제 열기가 그대로 월드컵으로 이어져 전 국민의 열광적인 응원 속에 브라질이 통산 6회 우승의 위업을 달성하면 대통령 선거에서는 누구에게 유리할까. 당연히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일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는 호세프 대통령의 승리를 예고하고 있다. 호세프 대통령의 예상득표율은 43∼47%로 나왔다. 야당 후보들의 예상득표율은 10%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브라질이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면 호세프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누구도 의심할 수 없게 된다. 브라질 특유의 ‘축구 정치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