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이 만든 4만7천원의 기적
배춘환씨 사연 소개에 독자들 너도나도 참여
이효리씨 동참에 확산…손배제 개선 계기 되길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 입력
2014.03.05 12:26:58
“47억원… 계산기를 두들겨보니 4만7000원씩 10만명이면 되더라고요. 법원에 일시불로 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우선 이 돈 4만7000원부터 내주실 수 있나요?”
모든 것은 한 통의 편지에서 시작되었다. 지난 연말, 시사주간지 ‘시사IN’의 이숙이 편집국장 앞으로 손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쌍용차 노조의 47억원 손해배상 판결 기사를 보고 두 아이의 엄마라고 밝힌 시사IN 독자 배춘환씨가 “작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고 싶다”며 4만7000원을 봉투에 넣어 보내온 것이다. 이숙이 국장은 시사IN 신년호를 통해 이 사연을 소개하며 “그저 눈물만 나왔다”고 전했다.
단발성 미담에 그칠 뻔했던 사연을 기적으로 만든 것은 시사IN 독자들이었다. 독자들은 너도나도 편지봉투에 4만7000원을 넣어 보냈고, SNS와 전화로 모금 ‘독촉’이 이어졌다. 독자위원회 제안에 따라 시사IN은 지난 1월 아름다운재단에 모금을 의뢰했고, 지난달 10일부터 손배 노동자 가족들의 생계 및 의료비 긴급지원을 위한 ‘노란봉투 캠페인’이 시작됐다.
|
 |
|
|
|
▲ 4만7천원을 담은 가수 이효리씨의 편지.(아름다운재단 홈페이지 캡처) |
|
|
잔잔히 퍼져가던 파장에 방아쇠를 당긴 것은 가수 이효리씨의 동참이었다. 이 씨는 “한 아이 엄마의 4만7000원이 제게 불씨가 됐듯 제 4만7000원이 누군가의 어깨를 두드리길 바란다”고 쓴 손편지와 함께 4만7000원을 아름다운재단에 보냈다. 이 편지가 공개된 지난달 18일과 19일 사이에만 1억원이 넘는 돈이 쏟아져 들어왔다. 덕분에 4억7000만원이라는 1차 모금 목표를 당초 계획보다 두 달 이상 앞당긴 보름 만에 조기 달성했다. 아름다운재단은 곧바로 지난달 25일부터 2차 모금을 시작했다. 4일 현재 총 모금액은 약 7억1000만원이다.
재단 측에 따르면 참여자의 85% 이상이 4만7000원이라는 상징적인 금액을 기부하고 있다. 최고액은 ‘시민악대’ 회원들이 기부한 1128만원이다. 2009년 촛불집회 당시 거리 공연을 하다 과잉 진압을 당한 이들은 지난달 24일 정부로부터 받은 손해배상금을 쾌척했다. 이밖에 시사IN 임직원과 노조가 내부 모금으로 모은 470만원과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기부한 100만원이 고액에 속한다. 세계적 석학 노암 촘스키 교수도 동참했다. 촘스키 교수는 이번호에서 주진우 기자와 인터뷰 하던 도중 쌍용차 사태와 ‘노란봉투 캠페인’ 소식을 듣고 “쌍용차 노동자들의 현실이 안타깝고 고통스럽다”며 47달러가 든 봉투를 전했다.
결과적으로 성공한 캠페인이 됐지만, 시작이 간단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숙이 국장은 처음 배 씨의 편지를 소개하며 “뒷감당을 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고 한다. 노동 관련 모금이라 대기업 같은 ‘큰손’을 기대하기 힘들어 재단 측도 망설였다. 하지만 “함께 고민하자”는 제안에 독자들과 시민들은 기꺼이 응답했다. 이 국장은 “우리 독자들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시사IN은 8일자 338호에서 ‘우리가 만든 기적 4만7000원’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며 감사 인사와 함께 특별한 각오를 전했다. 이숙이 국장은 “일회성 모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손배 노동자 가족들을 구제하고 근본적으로는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족쇄로 작용하는 손배 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수술하는 차원으로 가야 한다”면서 “책임감을 가지고 나름대로 해법을 제시하는 단계까지 고민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