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안관계 진전과 '통일 대박'
[글로벌 리포트 | 중국]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3.12 14:3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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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관수 KBS 상하이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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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타이완의 남부 도시 타이난에서 큰 소동이 벌어졌다. 타이완에서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쑨원(손문·孫文)의 동상이 쓰러진 것이다. 쑨원의 동상을 쓰러트린 이들은 타이완 독립파들로 이들은 동상 뒷면에 ‘ROC OUT’, 다시말해 ‘중화민국은 꺼져라’라고 스프레이로 써갈겨 현 국민당 정부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중화민국(ROC·Republic of China)은 타이완의 정식 국호이다. 이들 독립파들에겐 중화민국은 곧 국민당이고 그러다보니 장제스, 쑨원까지도 모두 한통속, 한묶음으로 치부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국부로까지 추앙받는 쑨원조차 적대적인 대상이 된 것일까? 이런 자극적인 행동은 독립파 자신들에게 정치적으로 불리할텐데 말이다.
그 해답은 바로 그 일주일 전 난징과 베이징 등지에서 진행된 양안간의 정치적 대화에 있었다. 양안, 다시 말해 중국과 타이완은 내전 이후 처음으로 양측 정부의 장관급이 참석하는 공식 협상을 난징에서 개최했다. 또 시진핑은 타이완 국민당 명예주석인 렌잔과의 만남에서 양안간의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해 더욱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타이완 독립파들에겐 바로 이런 정치적 행보가 대륙에 흡수되는 첫 단추로 보인 것이다. 현재 야당인 타이완 민진당의 주요한 토대를 구성하고 있는 독립파는 ‘중국에 흡수되면 천안문 사태가 재발할 것이다’라는 자극적인 주장으로 대륙에 근접하는 국민당 정부에 극도의 반감을 표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양안 관계는 민진당도 ‘타이완 독립’을 함부로 꺼내기 어려울 정도로 급속한 통합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가장 상징적인 것이 경제관계이다. 타이완은 대외무역의 40%를 중국 대륙과 할 정도로 긴밀한 융합과정에 있다. 이미 100만명이 넘는 타이완 사람들이 무역을 위해 대륙에 거주하고 있고, 유동적인 경우까지 합하면 300만명의 타이완인이 대륙에서 활동하고 있다니 그 통합의 속도는 가히 무섭기까지 하다.
사회문화 교류도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두 나라 대학이 학점 교류와 교환학생 수를 늘려가고 있고, 상대방 지역을 취재하는 상주 언론인들의 숫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중국 중앙방송(CCTV)은 현지 스튜디오에서 타이완 소식을 전하고, 매일 진행되는 양안소식(海峽兩岸)이란 프로그램에선 타이완 시사평론가, 정치인들까지 출연한다. 또 중국 국무원 타이완 판공실에선 매주 한번씩 정기 기자회견을 통해 양안 관련 소식을 브리핑하는데 여기에는 타이완 기자들이 대거 참석한다.
우리 눈에는 부럽고 놀라운 이런 현상은 1993년 양안이 준국가기구인 타이완의 해기금(해협교류기금회)과 중국의 해협회(해협양안관계협회)가 협상에 나선 뒤 20여년의 파란 곡절 끝에 이뤄낸 성과이다. 리덩후이, 천수이벤 총통시기 독립 노선으로 인한 갈등에도 교류까지 끊기진 않았고 국민당 마잉지우 총통 집권 이후 2010년 양안경제협력기본협정(Economic Cooperation Framwork Agreement, ECFA)이 발효되면서 양안관계는 급속한 통합의 과정에 들어서게 된다.
지금 지구상에서 아직도 통일을 얘기해야 하는 나라는 불과 몇나라 되지 않는다. 통일 대박! 현재 양안 관계를 보노라면 ‘통일 대박’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만큼 조건을 갖춰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통일이란 단어를 아직 쓰지 않는다. 통합이란 말도 별로 없다. 그저 양안간의 교류 확대이다. 그만큼 긴 호흡의 과정으로 보기 때문이고 또 그만큼 자신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통일이란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상대를 고려한 전략적 태도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 다시 통일의 열풍이 불고 있다. 역시 ‘통일 대박’이다. 그런데 왠지 허전하다. 교류는 막힌지 오래고 남북간 맥을 이어주는 개성공단 역시 ‘죽다가 살아나’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신세다. 상주 기자는 고사하고 상대방 취재조차 하나 없는, 서로가 섬이 된 지 오래다. 간헐적인 이산가족 상봉이 교류 회복의 신호가 되지 못하는 이유다. 물론 이 역시 세습 정권유지를 위해 핵개발에 매달리는 북한탓도 크지만, 신앙적인 ‘북한 붕괴론’에만 매달려 정책다운 정책 하나 펴지 못한 우리 정부탓도 결코 작지 않다. 압박으로 일관한 지난 정부 외교안보 책임자들은 정말 이랬다. ‘효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봅시다.’
통일 대박, 통일준비위원회. 교류를 확대하지 않는 상황에서, 교류의 성과가 없는 상황에서 나온 이런 과도한 의지는 정치적 슬로건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요행수를 연상시키는 대박이란 용어를 지난한 인내와 노력이 필수적인 통일에 갖다 붙이는 건 너무 생경하다. 지금은 통일이 아니라 평화와 교류·협력을 이야기해야 할 때다. 그런 다음 통일을 이야기해도 늦지 않다. 통일은 결코 도둑처럼 오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