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홍·이진숙은 기자가 아니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권재홍 앵커가 뉴스데스크 진행을 마치고 퇴근하는 도중 노조원들의 퇴근 저지를 받는 과정에서 신체 일부에 충격을 입어 당분간 방송진행을 못하게 됐습니다.”

광주민중항쟁 32주기를 앞둔 2012년 5월17일, MBC 문화방송은 보도본부장이기도 한 권재홍 앵커가 노조원들로부터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뉴스데스크 톱 아이템으로 방송했다. 하지만 명백한 허위 보도였다. 노조원들이 권재홍 앵커와 신체 접촉한 사실이 없었던 것이다. MBC 기자회는 뉴스데스크 보도에 대해 정정보도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남부지법은 정정보도와 2천만원의 손해배상을 판결했다. 기자들이 자사 뉴스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슬픈 희극이었다.

대선 열기가 뜨겁던 같은 해 10월 MBC 이진숙 기획홍보본부장이 MBC 2대 주주인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을 극비리에 만났다. 이 자리에서 정수장학회 소유 MBC 주식과 부산일보 주식을 팔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선거용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의한 사실이 언론에 폭로됐다. 장학 재단 소유의 언론사 지분을 매각해 특정 후보의 선심성 공약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사상 초유의 불법 선거 의혹이 드러난 것이다.

최소한의 체면을 안다면 이 정도 논란이 불거졌을 때 사법 당국의 판결에 관계없이 권재홍 본부장과 이진숙 본부장은 스스로 언론계를 떠나는 게 너무나도 당연했다. 이 정도 물의를 빚었으면 언론사가 아니라 일반회사였어도 바로 업무가 정지됐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6일 MBC 최대 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는 오히려 권재홍씨를 부사장으로, 이진숙씨를 보도본부장으로 승진시켰다. 가짜 환자가 돼 후배들을 폭도로 왜곡하는 거짓 뉴스를 내보냈던 앵커가 경영하는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어느 시청자가 신뢰하겠는가. 특정 정당 후보를 위해 방송사 주식까지 매각하려 했던 자가 뉴스 책임자인 방송사의 선거 보도를 누가 믿겠는가.

권재홍 이진숙 두 사람뿐 아니라 김재철 사장 시절 부사장은 아예 사장이 되었다. 김재철 사장만 없을 뿐 핵심 임원이 모두 김재철 측근들이다. 때문에 정부 여권이 이른바 ‘김재철 키드’를 전면에 내세워 이번 지방선거에서 또다시 편파 왜곡 보도를 하려는 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만약 그 의혹이 현실화된다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방송문화진흥회법은 1조에 ‘MBC의 공적 책임을 실현하고 민주적이며 공정하고 건전한 방송문화의 진흥’을 방문진의 설립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방문진 이사들은 허위보도와 해괴한 음모로 국민을 조롱한 인물들을 해임하는 대신 오히려 승진시켜 방문진법을 정면으로 위반했다. 이번 인사를 계기로 ‘방문진 체제를 이대로 두어선 안되겠다’는 인식이 언론계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언론계와 정치권은 공정하고 상식적인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자리 잡게 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개선에 본격 나서야 한다. 그 첫 번째 개혁 대상은 방문진이다. MBC 기자들의 제명 조치가 내려진지 오래됐지만 전국의 기자들도 권재홍씨와 이진숙씨를 동료 기자로 인정치 않을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두 사람의 몰염치한 행태는 기자 사회 전체를 욕먹게 하고 있다. 사실과 공정의 존엄에 모욕을 가하는 자는 기자가 아니라 기자의 적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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