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육아 휴직, 제도보다 인식 바꿔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편집위원회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3.19 15:14:50
기자사회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무용담’이 넘친다. 부서 회식 중에 산통이 시작돼 앰블런스 안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선배의 경험은 전설로 남아 있다. 출산 휴가제도가 아예 없어서 출산 때마다 퇴직하고 재입사할 수밖에 없었다는 선배 얘기도 마찬가지다. 법정 출산휴가 기간 중에도 부장의 압력에 못이겨 산후조리도 못한 채 회사에 나오는 사례는 요즘도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문제는 전설이나 무용담은 뭔가 본받아야 할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할진데 ‘출산과 육아에 관한 무용담’은 더 이상 권장하거나 따라서는 안될 관습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다행스러운 대목은 여건이 크게 나아졌다는 점이다. 예전 같으면 꿈도 못꿨던 1년 육아휴직-실은 3개월 출산휴가와 9개월의 육아휴직-을 쓰는 기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보수적인 언론사 안에서도 과감하게 1년 휴직을 쓰는 선구자들이 하나 둘씩 생겼다. 모성보호를 위한 법과 제도가 강화된데다 언론사에서 여기자들의 수가 많아지면서 일어난 의미 있는 변화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여성성을 존중하고 출산을 장려하며 육아에 대한 지원을 늘려나가는 것은 고령화 저성장에 직면한 우리 사회의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누구나 공감하는 사회적 합의이기도 하다. 정작 언론사는 이 같은 도도한 흐름에 여전히 뒤처져 있다. 한 신문사에서는 지난해 육아휴직 1년을 쓰고 돌아온 기자가 연차만 채우면 기계적으로 보장되던 차장 승진에서 물먹었다. 육아휴직 1년은 근속연수에서 뺐다는 게 사측의 설명이다.
둘째 아이 출산을 결심한 여기자는 주요 부서나 중요 보직으로의 이동은 그 순간 ‘스스로 알아서’ 포기했다고 한다. 여성 기자들의 육아휴직도 이렇게 대하는데 남성 기자들의 육아휴직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언감생심이다. 세종대왕 시절에도 남성 육아휴직까지 줬다는데 언론사는 시대정신에 고립된 외진 섬이다.
물론 법적인 보장과 노사 합의를 통해 출산과 육아를 지원하는 제도는 이미 많이 도입됐다. 거의 모든 언론사들이 단체협약에서 3개월 법정 출산휴가를 보장하고 1년 이내 육아휴직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대체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부서장과 동료들의 눈치를 보느라 이 같은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기란 사실상 힘들다.
이제 제도보다 인식을 바꿔야 할 때다. 무엇보다 데스크와 경영진, 동료 기자들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 언론인들은 기사와 사설에서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고령화와 저성장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해 출산을 장려하고 여성인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들이 데스크에 앉고 경영을 맡게 되면 임신과 출산을 앞둔 기자를 기피하고 육아휴직을 쓰면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는 사례가 하나 둘이 아니다. 지성인들이 모인 집단에서 자기 약속을 저버리고 스스로 제시한 사회비전을 스스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 양성평등을 실현하고 고령화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언론계 풍토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고령화 위험과 저성장의 피해는 여성들에게만 끼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넘어야 할 시대적 과제다. 출산을 장려하고 경력단절로 인해 꿈을 저버리는 여기자가 없도록 이제 기자사회가 전향적으로 나설 때다. 둘째, 셋째를 키우면서도 맹활약하는 여성 데스크가 많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