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극복 과정서 확인한 '강인한 칠레'

[글로벌 리포트 | 남미]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현지 시각으로 4월1일 오후 8시46분경, 칠레 북부 태평양에서 규모 8.2의 강진이 발생했다. 곧바로 쓰나미(지진해일) 경보가 발령됐고 크고 작은 여진이 이어졌다. 산사태와 도로 폐쇄, 정전, 통신 두절 등 사고가 잇따랐다.

칠레 국립지진센터(CSN) 보고서에 따르면 강진 이후 수백 차례의 여진이 일어났다. 재난관리 당국자는 여진이 앞으로 수개월간 계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칠레가 ‘불의 고리’로 불리는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한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순간이었다.

연속된 지진으로 최소한 100만명이 2~3일간 집을 떠나 있어야 했다. 그러나 피해는 걱정한 것보다 적었다. 6일 현재까지 사망자는 7명에 그쳤다. 피해 지역에 대한 식수와 전기, 연료 등의 공급도 신속하게 이뤄지고 있다.

2010년 2~3월의 상황이 떠올랐다. 칠레는 2010년 2월27일 발생한 규모 8.8의 대지진과 쓰나미로 큰 재앙을 겪었다. 당시 대지진과 쓰나미는 수도 산티아고를 포함한 중남부 지역을 강타했다. 공식적인 집계로만 526명이 사망하고 80만명의 이재민을 냈다. 재산 피해도 300억 달러에 달했다.

칠레 출장길이 쉽지 않았다. 산티아고 공항이 통제돼 항공기를 이용할 수 없었다. 안데스 산맥을 넘기로 했다. 한 방송사 특파원과 함께 상파울루를 출발해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 칠레와 인접한 멘도사 시까지 이동했다.

멘도사 공항은 외국 취재진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재빨리 차량을 가진 현지인을 섭외했고, 한 부자가 우리와 동행하기로 했다. 말로만 듣던 안데스 산맥을 차량으로 넘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안데스 산맥의 장엄한 풍광이 지진을 취재하러 간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 했다.

낡은 밴에 몸을 싣고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피해 현장을 찾아 다니던 기억이 새롭다. 지진이 강타한 도시는 폐허를 연상케 했고, 쓰나미가 할퀴고 간 해안도로는 아스팔트가 처참하게 뜯겨져 나갔다. 이재민들은 ‘아유다(ayuda·스페인어로 ‘도와달라’는 뜻)’라고 쓴 깃발을 내건 채 힘든 천막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지진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이었다. 바첼레트는 2006년 초~2010년 초 한 차례 대통령을 역임했다. 대지진과 쓰나미는 바첼레트 퇴임 12일 전에 일어났다.

칠레에서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1973~1990년)이 종식되고 나서 중도좌파 진영이 20년간 집권했다. 그러나 중도좌파는 2009년 대선에서 보수우파 후보인 세바스티안 피녜라에게 패했다.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바첼레트는 대지진과 쓰나미로 엄청난 부담을 안아야 했다.

그러나 칠레 국민은 단결했고, 대재앙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퇴임하는 바첼레트와 취임하는 피녜라 모두 피해 복구에 사력을 다했다. 중도좌파에서 보수우파로의 정권 교체기였지만, 정치권은 정쟁을 잠시 멈췄다. 그리고 1년 후 칠레는 남미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2010년 6월에 열린 남아공 월드컵에서 칠레 대표팀 훈련캠프 입구에는 찢어진 흙투성이 국기가 걸렸다. 쓰나미가 덮친 해안 도시에서 한 남성이 흙더미 속에서 건져낸 국기였다. 칠레 대표팀 선수들은 ‘지진국기’를 보며 투지를 불태웠고 16강 진출을 이뤄냈다.

지난 3월11일 두 번째로 대통령에 취임한 바첼레트는 이번엔 임기 초에 지진 사태를 맞았다. 바첼레트는 강진으로 피해를 입은 북부 해안을 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곧바로 현장을 방문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였다. 북부 도시를 방문 중이던 바첼레트는 강력한 여진으로 쓰나미 경보가 발령되자 주민들과 함께 대피했다. 트위터에 “모든 시민처럼 나도 대피했다. 시민은 (지진에) 대비돼 있다”는 글을 올리며 국민과 함께했다.

이번 강진으로 큰 피해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제사회는 칠레의 지진 대처능력에 주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강진에도 별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이유로 엄격한 내진 설계를 들었다.

그보다는 칠레 국민의 의지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칠레는 재난 위험에 철저하게 대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재난과 역경은 칠레 국민을 강하게 만들었다. 2010년과 2014년의 지진과 이후 극복 과정에서 ‘칠레의 가능성’을 재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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