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고발자와 퓰리처상, 세월호 참사
[글로벌 리포트 | 미국] 이태규 한국일보 워싱턴특파원
이태규 한국일보 워싱턴특파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4.23 15: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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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규 한국일보 워싱턴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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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은 미국 언론들 잔치다. 하지만 올해는 외국 기자에게도 시사점이 적지 않다. 이 상의 최고 영예는 상금 없이 금메달만 주는 공공 서비스 부문이다. 이 부문 수상자는 에드워드 스노든 전 중앙정보국(CIA) 직원이 빼낸 국가안보국(NSA) 기밀서류를 보도한 워싱턴포스트와 가디언에 돌아갔다. 기밀서류 보도에 대해 안보라는 국익보다 국민의 알 권리라는 공익에 방점이 찍혔다.
한국이었다면 안기부 불법 녹취 파일을 보도한 것에 퓰리처상이 수여된 셈이다. 이런 기사 보도를 막던 ‘독수독과 이론’은 미국 언론의 보도윤리가 아니었다. 퓰리처상 수상으로 스노든이 기소된 혐의인 간첩죄 논란이 종지부를 찍은 건 아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체류 중인 그가 나중에 법정에 설 때까지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가 폭로한 기밀을 보도한 언론이 명예를 차지한 건 분명 모순이다.
하지만 미국 민주주의는 이 같은 불이익을 감수한 내부고발자(휘슬블로어)에 의해 전진해왔다. 전ㆍ현직 관료나 연구원, 경영인 등이 그때그때 휘슬블로어로 등장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1971년 다니엘 엘스버그 전 국방부 직원이 뉴욕타임스에 흘린 펜타곤 페이퍼는 잘못된 전쟁인 베트남전이 빨리 끝나도록 하는 데 역할을 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딥 스로트’인 마크 펠트 전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하야를 가져왔다.
또 90년대 거대 담배회사들이 담배의 유해성을 알고도 숨긴 사실을 폭로한 담배회사 B&B 전 연구원 제프리 위건드의 폭로는 2460억달러의 배상금을 받아내며 금연 운동에 불을 댕겼다. 뉴욕시 경찰이 깨끗해진 것도 전직 경관 프랭크 세리코가 내부 비리를 폭로한 덕분이다. 진보성향의 영화감독 로버트 그린월드는 이런 휘슬블로어들이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후예이자 민주주의를 제대로 작동케 하는 주인공이라고 평가한다.
어느 사회이든 안보에 집착할수록 그 사회는 더 많은 정보를 취득하려는 속성을 지닌다. 그럴수록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더 많은 휘슬블로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스노든 사례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제2, 제3의 스노든이 계속 나올지는 미지수다. 폭로나 고발이 과거보다 훨씬 어려워졌고, 언론에 정보를 제공하려다 막판에 거부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버락 오바마 미 정부는 내부고발자를 가차 없이 단죄하는 것으로 이름나 있다. 한인 출신 스티븐 김 박사가 폭스뉴스 기자에게 북핵 정보를 말한 ‘미필적 유출’까지 간첩죄로 처벌한 것이 그런 사례다. 반면, 내부고발의 필요성은 훨씬 커져 있다. 스노든이 폭로했듯 고도화된 기술로 무장한 정보기관들의 세계는 거대하다. NSA는 매일같이 17억개의 이메일과 전화 정보를 수집한다. 또 미 22개의 정보수집기관, 3000여 기관과 기업에서 약 100만명이 정보 업무를 처리한다. 9·11테러 이후 10여년 만에 달라진 미국의 모습이 이럴진대 반세기 넘게 북한 공포에 장악된 우리 사회는 어떠할까. 국정원의 간첩사건 증거조작에서 보듯 우리 사회는 더 많은 휘슬블로어를 필요로 할지 모른다.
퓰리처상의 또 다른 영예인 속보 부문에선 지난해 4월 보스턴 마라톤 테러를 연속 보도한 보스턴글로브가 차지했다. 이 신문의 수상은 대형사건 속보경쟁 때 특종이 오보가 된 경우가 허다한 가운데 이뤄졌다. 땀이 배어 있는 기사를 평가한 것이었기에 더욱 값졌다. 미국 언론 역시 그 실력이 속보경쟁에서 드러난다는 점은 우리 언론과 매한가지다.
당시 언론은 테러범 추적 과정을 게임 보도하듯 선정적으로 처리했다. 케이블 TV들은 그리 해서 시청률을 한껏 끌어올렸다. 그러나 속보를 위해 정확성을 포기하면서 오보의 무덤을 피해간 곳은 얼마 되지 않았다. CNN은 엉뚱한 용의자 체포란 속보를 내보냈다가 낚인 꼴이 됐고, AP통신, 폭스뉴스 등도 예외가 아니었다. 2년 전 한인 지하철 사고 사진을 1면에 게재해 공분을 산 뉴욕포스트 역시 자극적인 오보로 뭇매를 맞았다.
그런 점에서 보스턴글로브의 이번 수상은 속보와 오보의 경계를 늘 넘나들어야 했던 보도에 대한 격려라고 볼 수 있다. 퓰리처상 선정위원회는 이 신문이 끔직한 사건에 철저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보도를 했다고 평했다.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속보경쟁을 포기하고 정확성에만 초점을 맞추었던 뉴욕타임스의 보도는 새로운 보도 방식이란 점에서 계속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아직 진행 중인 세월호 여객선 침몰사고의 속보경쟁을 벌이는 우리 언론이 참고할 대목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