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보도, 수사와 함께 유병언 비리로 이동
일부 언론 정부책임론에서 대통령 지우고
지상파 총리 사의표명 여야 반응만 전해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 입력
2014.04.30 14:32:31
|
 |
|
|
|
▲ 언뜻 세월호 사고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 유병언 씨 일가의 비리나 구원파 관련 언론 보도가 늘고 있다. 지난 23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3면 기사. |
|
|
“현장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25일 진도 팽목항을 취재하던 한 종합일간지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 3주째. 29일 오후 10시 현재 실종자 97명은 아직 생사를 알 수 없고, 구조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런데 최근 언론 보도에서 세월호 참사 현장의 목소리가 점차 잦아들고 있다. 대신 유병언이니 구원파니 해피아(해수부 마피아) 등 세월호 사고와 언뜻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사안으로 관심의 초점이 옮겨가는 양상이다.
유병언·구원파·해피아로 활시위 돌려중앙일보는 지난 28일부터 ‘관피아를 깨자’는 주제로 ‘국가개조 프로젝트’ 연속 보도를 시작했다. 관피아란 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로, “세월호 침몰도 뿌리 깊은 관료·업계 유착이 원인”이라는 게 중앙일보의 주장이다.
중앙은 이미 지난 22일자 신문부터 1면 머리기사에서 세월호 현장 소식이 사라졌다. 22일 “검찰이 세월호 운영사인 청해진해운 실소유주 일가의 탈세 등 비리 수사와 함께 국내외 재산 추적에 나섰다”는 보도를 시작으로 사흘 연속 유병언 전 세모 회장의 비리 혐의 등을 1면 톱으로 올렸다. 심지어 이번 사고와의 인과관계가 전혀 설명되지 않는 구원파 뉴스를 톱(23일자)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도 지난 23일 유병언 전 회장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를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한 이후 28일까지 매일 유 전 회장 관련 기사를 1면에 실었다. 동아일보도 23일부터 줄곧 유 전 회장 기사를 1면에 내걸었다. 사고 초기 세월호 선장과 선원을 향하던 언론의 활시위가 유병언 일가와 구원파, 해피아 등을 향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세월호 사고 늑장 대응과 관련한 박근혜 정부 책임론이나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들의 꺼지지 않는 분노는 1면에서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검찰은 과거 어느 수사보다도 빠르게 움직였다. 검찰 수사 대상은 사고 원인, 해운·항만 비리,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인 유 전 회장 일가의 비리 등으로 광범위하게 확대됐다. 동아·조선·중앙의 집중 보도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이와 관련해 경향신문은 “총괄적 책임을 져야 할 정부는 ‘해결사’ 역할을 하는 검찰 뒤에 숨었고, 검찰은 이번 사건을 각종 악재를 집어삼키는 호재로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향은 29일 6면 머리기사에서 “참사의 원인을 철저히 수사하고 책임자를 엄벌해야 한다는 것에는 이론이 없지만, 수사 대상을 먼저 정해놓고 사고와 직접 관계가 없는 비리를 ‘별건수사’로 진행한다는 점에서 검찰 내부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에 불리한 내용 누락·축소외신들은 세월호 참사로 박근혜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국내 주류 언론들은 정부 책임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을 지우기 바빴다. 23일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국가안보실은 세월호 참사의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을 때에도 경향과 한겨레 등 일부 언론만 이를 주요 뉴스로 다뤘다. 조선은 24일자 12면 2단 기사에서 “부적절했다”고 지적했지만, 이날 동아와 중앙은 기사를 다루지 않았다.
대통령과 여당에 불리한 내용에 눈감는 행태는 지상파 방송사가 더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는 소식은 25일 지상파 3사 뉴스에서 자취를 감췄고, 전국적인 애도 분위기 속에 유한식 새누리당 세종시장 후보가 폭탄주를 돌려 물의를 빚은 소식도 지상파에서는 보도되지 않았다. 특히 MBC는 지난 21일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의 아들이 SNS에 세월호 사고 실종자 가족들을 가리켜 “국민 정서가 미개하다”는 주장의 글을 올려 정 의원이 사과까지 하는 소동이 빚어졌음에도 방송사 중 유일하게 관련 보도를 하지 않았다. 실종자 가족이 모여 있는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의전용 의자에 앉아 라면을 먹는 모습이 사진에 찍혀 구설수에 오른 서남수 교육부 장관에 대해서도 MBC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반면 세월호 사고 직후 실종자 가족 대표를 자처해 물의를 일으킨 송 모 전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 의원 예비 후보에 대해선 하루에 두 건의 리포트를 내보냈다. MBC 보도국 한 기자는 “최근 편집회의에서 국장이 세월호 사건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세력이 있다는 얘기를 몇 번인가 했다고 들었는데,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게 정작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지난 27일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의 표명에 대해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제기됐을 때에도 지상파 3사는 여야의 반응만 전했다. 조선과 중앙이 재빨리 대통령 사과를 촉구하고 나선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중앙은 28일 사설에서 “박 대통령은 적절한 시점에 이번 사건에 대한 본인의 입장 발표 및 대국민 사과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조선도 “총리의 사의 표명 정도가 아니라 대통령을 비롯, 내각 전체가 석고대죄를 해도 분이 안 풀릴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 이충재 논설위원은 29일 칼럼에서 “이제 대통령이 반성문을 써야 할 차례”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