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맞는 게 두려워 실종자 가족 만나지 않고 기사 썼다"

KBS 1~3년차 기자들 세월호 보도 '반성문' 파문

KBS 막내 기자 55명이 세월호 침몰사고에 대한 보도를 반성하며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들이 참석한 토론회를 전격 제안했다. 진도와 목포, 안산 등 세월호 관련 현장에서 취재했던 입사 1~3년차 막내 기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그 파장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KBS 38~40기 취재ㆍ촬영 기자들은 7일 오전 사내 보도정보시스템에 단체로 ‘반성합니다’라는 글을 올리고 재난주관방송사인 KBS의 세월호 침몰 사고 보도에 대한 반성과 사과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침몰하는 KBS의 저널리즘을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다”며 “KBS가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했는지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그 결과물을 9시뉴스를 통해 전달하고, 잘못된 부분은 유족과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사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KBS를 어떻게 믿어요?” “KBS 정말 싫어…”


막내 기자들은 진도 팽목항과 실내체육관, 안산 합동분향소 등에서 KBS에 대한 불신과 분노를 직접 겪으며 기자로서의 무력감을 느꼈다. 팽목항 현장에서는 KBS로고가 박힌 잠바를 입는 것조차 두려웠다. 시민들이 욕하는 '기레기(기자+쓰레기)'가 되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취재현장에서 '기레기 중 기레기'가 된 것을 체감했다. 어느새 취재에 대한 고민보다 시민들의 따가운 눈총과 질타를 피하는 것부터 고민됐다.


사연을 쫓아다니고, 연일 오열하는 가족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도 자괴감이 들었다. A기자는 “연일 눈물 짜내기식 인터뷰와 취재를 지시 받았고, 시청률에 급급해 유가족들의 감정과 사생활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것에만 공력을 쏟았다”며 “현장 연결을 줄이고 그 이상의 리포트 편성이 필요했다. 의미 없는 중계에 취재기자 비추기식 현장 연결이 지나치게 많았다. 시청자들이 정작 보고 듣고 싶어 하는 내용의 리포트는 부족했다”고 했다.


B기자도 “팽목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레기가 되지 않겠다고 수 없이 다짐했다”며 “하지만 현장을 취재하는 동안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 눈물을 놓칠세라 촬영하는 자신을 발견했고,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기보다 ‘뉴스’를 만들겠다는 일념 하에 카메라를 들이댄 데 반성이 크다”고 했다. 이어 “정확한 현장상황을 모른 채 내려진 취재지시 역시 많은 기자들을 부추겼다”며 “현장상황과 현장기자들의 어려움은 외면한 채 부서간의 소통 부재와 무의미한 경쟁, 소모적 인력 낭비로 리포트를 만든 것은 아닌지 과연 누굴 위해 뉴스가 만들어지는지 의문이었다”고 했다.


C기자도 “매맞는 것이 두려워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지 않고 기사를 썼다. 리포트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사라졌다”며 “그런데도 위에선 ‘아이템들이 너무 실종자 입장으로 치우쳤다’며 전화를 했다”고 전했다.


KBS라는 이유로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 시민들에게 번번이 인터뷰를 거절당했다. 시민들은 질책을 넘어 분노가 솟구쳤다. D기자는 “KBS뉴스에는 자신들의 ‘호소’만 있고 ‘이야기’는 없다며 거부했다. 실제로 슬픔에 잠겨 울부짖는 가족들 모습은 뉴스마다 넘쳤지만, 유가족들이 현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정부에 대책을 촉구하던 모습은 제대로 담기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 사망한 아이가 찍은 마지막 영상을 타사(JTBC)에 제보한 한 아이 아버지는 인터뷰를 두 시간도 안 돼 번복했다. 유족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될 것이란 확신이 없다는 이유였다.




   
 
  ▲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기자들은 2층에 자리를 잡고 리포트를 하거나 기사를 작성했다.  
 


특히 진도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관련 보도에는 “부끄럽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의 진도 방문 모습은 잘 짜인 연출된 모습이었다. 박 대통령이 두 번째로 진도를 방문한 지난 4일, KBS는 9시뉴스에서 박 대통령의 진도 팽목항과 사고해상 방문을 톱기사로 2개를 연달아 다뤘다. E기자는 “팽목항에서의 혼란스러움과 분노는 다루지 않았다”며 “육성이 아닌 CG로 처리된 대통령의 위로와 당부 말씀만 있었을 뿐이다. 다행히 두 번째 바지선 위 희생자 가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의 분노와 절규는 사라졌고, 너무나 정제됐다는 느낌을 지우긴 어려웠다”고 했다.


지난달 17일 첫 방문 리포트도 다르지 않았다. 진도실내체육관에서 가족들의 목소리는 없었다. 오로지 대통령의 목소리와 박수 받는 모습만 보도됐다. 안산 합동분향소 조문 역시 조문객을 실종자 가족인 듯 편집했다. E기자는 “대통령은 찬사와 박수만 받아야 하고 아무 책임도 없는가”라며 "왜 KBS뉴스는 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지 않는지”비판했다. F기자도 “기묘한 편집술 덕에 공무원의 호응이 마치 가족 반응인 것처럼 둔갑한 ‘날조’”라며 “KBS뉴스에서 사고 수습책임을 회피하는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덕분에 요즘 취재 현장에서 KBS기자는 ‘기레기 중 기레기’”라고 했다. 그는 “시민과 후배들로부터 ‘편집권 독립’을 외치지 말고 부디 권력으로부터 ‘편집권 독립’을 이루라”고 했다.


취재기자의 운용 방식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하루살이’ 취재에 ‘연속성’은 없었고, 주로 경험이 부족한 1~3년차 기자로 구성됐다. G기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사실이 쏟아지는데 매일 다른 영역을 취재하려니 기존 기사를 검색하기 바빴다”며 “따라가기 급급했고, 한정된 시간에 얄팍한 취재만 하다 보니 기획 보도는 어불성설에 악순환이었다”고 했다. 이어 “1~2, 3진 없이, 혼란스러운 취재현장에서 막내급 기자들 혼자 고민하며 끙끙대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 데스크에 전화를 거는 게 전부였다”고 했다.


기자들은 과연 세월호 ‘취재현장’에 있었는지 물었다. H기자는“세월호가 가라앉은 먼 바다는 어떤 언론사도 접근할 수 없는 ‘현장’이었다.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현장’은 ‘사람’이었을 뿐”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현장’을 취재하지 않았다. 유가족들이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울부짖을 때 우리는 ‘현장’이 없는 정부와 해경의 숫자만 받아 적으며 냉철한 저널리스트 흉내만 내며 외면했다”고 했다. 정부의 숫자놀음에 대한 비판은 사건 발생 후 12일 후, 취재기자 발제로 겨우 나왔을 뿐이었다.  


H기자는 “가장 우수하고 풍부한 인력, 장비를 갖고 있는 공영방송 KBS는 정부 발표를 검증하고 비판하라고 국민들로부터 그 자원을 받은 것 아니냐”며 “왜 자원을 가장 적합한 목적에 쓰지 않는지. 왜 현장에 있는 답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지” 질타했다.


G기자도 “입사 전 최종면접에서 보도의 정확성과 신속성 가운데 뭐가 더 중요하냐는 질문에 정확성이라고 답했다. 불과 아홉달 전 일”이라며 “막내기자로서 갖고 있는 신념을 아직 저버리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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