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기자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세월호 보도 특별기고]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5.14 13:3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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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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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기자들이 12일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들 사이에 팽배한 언론 불신 문제를 토의하는 자성(自省)회의를 가졌다. 세월호 참사 보도에 대한 유족들의 불신과 분노가 자극이 돼 언론인들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토론의 장이었다. 국민의 언론 불신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는 소리가 나온 것은 꽤 오래 됐다. 공영방송의 또 하나의 축인 MBC 기자들도 성명을 통해 스스로를 반성하는 ‘대국민 사죄문’을 발표했다.
형식은 다르지만 오보와 선정적 보도, 권언유착으로 요약되는 세월호 보도에 대한 국민의 차가운 시선에 공영방송 기자로서 본분을 다하지 못한데 대해 시청자들에게 사죄하고 언론의 사명에 좀 더 충실하겠다는 다짐의 표현이었다고 본다. 세월호 보도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분노의 목소리가 그동안 잠자고 있던 공영방송 기자들의 사명의식을 깨운 결과였다. 세월호 참사 보도로 한국의 언론도 침몰했다는 모욕적인 조소가 이들을 각성시켰다는 생각이다.
한국 언론이 불신을 받게 된 1차적 책임은 영향력이 가장 큰 공영방송 KBS에 돌아가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반성하고 행동에 나선 것은 입사 1~3년차 KBS 젊은 기자들이었다. 이들은 세월호 보도를 반성하면서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가 참석하는 대토론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철저히 정권의 보호견으로 전락한 경영진 아래서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 언론의 명예회복을 위해 나선 그들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기자들과 경영진이 매체의 주요 문제를 함께 토의하는 것은 유럽 언론에서는 제도화 된 관행이다. 사주의 이익추구 때문에 언론자유가 위축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다.
세월호 희생자 수를 교통사고 사망자와 비교한 김시곤 보도국장의 ‘망언’은 세월호 유족들의 분노를 샀고, KBS 기자들이 행동에 나서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유족들의 행동은 대외적으로 KBS가 청와대의 지시를 받는 기관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데도 효과가 있었다.
김시곤 국장은 사퇴 기자회견에서 “길환영 사장은 권력의 눈치만을 보며 사사건건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해왔고 평소에도 끊임없이 보도를 통제했다”고 비난하면서 사장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길 사장이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밝혀졌고, 당선되면 공영방송의 공공성을 보장하겠다던 그의 약속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명박 정권 이후 한국의 언론자유는 계속 위축되고 있다. 국제 언론감시 단체 프리덤 하우스가 지난 1일 발표한 2014년 세계 언론자유 순위는 68위로 작년 보다 네 자리나 추락했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이 올해도 언론자유에서 ‘부분적 자유국’(partly free)의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2011년 언론자유에서 ‘부분적 자유국’으로 추락한 한국이다. 한국은 아직 완전한 ‘언론자유’ 국가가 아니라는 선언이다.
지상파 방송 등 주류언론보다 뉴스타파, 국민TV, 이상호의 고발뉴스와 같은 대안 미디어를 보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 종편 중에서는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뉴스9’ 시청률이 급상승해 MBC 메인뉴스인 ‘뉴스데스크’를 거의 따라잡고 있다고 한다.
주류언론이 세월호 유족이나 시청자들에게 불신을 사고 있는 반면 뉴스타파와 같은 대안매체가 왜 신뢰를 받는지 세월호 관련 보도를 비교하면 쉽게 간파할 수 있다. 텔레비전에서는 수많은 함정, 항공기, 잠수요원 등의 모습을 반복해서 내보낸다.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는 착각을 일으킨다. 눈속임이다. 그래서 김종대(유족)씨는 “실제로는 이 양반(기자)들이 하루 종일 정부에서 불러주는 기사를 받아쓰기나 하고 사람들 찔찔 짜는 모습이나 계속해서 종일 내보냈지 한 게 없거든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뉴스타파 화면 아래에는 “수중 유속이 빠르고 기상이 좋지 않아 수색 작업이 어렵다”는 자막이 보인다.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우니 기대하지 말라는 메시지다. 다른 방송과 다른 점이다.
왜곡 보도는 불신을 키우는 주범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진도를 처음 방문한 4월17일, 그가 유족들과 만났을 때 유족들의 항의가 많았다. 그런데 KBS는 유족들의 목소리는 지워버리고 대통령이 열심히 구조작업을 하겠으니 안심하라는 격려의 말과 그 말 뒤에 요란한 박수 소리가 들리는 방송을 했다. 대통령이 유족의 환영을 받고 있는 인상을 주는 방송이다. 유족들을 분노하게 하는 방송이다. 유족들이 방송을 불신하고 분노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때 박수는 유족의 박수가 아니라 체육관에 있던 관리들의 박수란다. 유족들이 분노하는 이유를 짐작할만 하다.
박근혜 정권이 세월호 참사를 처리하는 위기관리에 문제가 많았고 그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 지지도가 크게 추락했다. 그런데도 일부 언론은 여론조사가 잘못 됐다거나 세월호 사고로 박 대통령의 지지에는 별 변화가 없었다는 식으로 왜곡 보도를 했다. 또 유족들이 청와대를 항의 방문한 것은 외부 사람이 부추긴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런 어이없는 보도가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키운다.
언론의 세월호 보도에 가장 민감한 사람이 유족들이다. 그런데 세월호 보도에 오보와 왜곡보도가 많았고 그래서 이들이 분노했다. 다른 사람들의 주장이라면 권력이 개입해서 입을 막을 수도 있었겠지만 아무 잘못 없이 생때같은 아들·딸들을 잃은 유족들의 분노를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언론에 대한 유족들의 불신과 분노는 그대로 언론에 반영됐고 언론이 반성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세월호는 민주국가에서는 주권자인 국민의 분노만이 권력과 언론의 잘못을 고칠 수 있는 즉효약이라는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민주국가에서 권력과 언론의 오만을 꺾고 그들의 무관심을 깨울 수 있는 힘은 국민의 분노다. 국민이 분노하기 전에 언론이 국민의 분노를 전달해서 권력이 긴장하게 한다면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 더 바람직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제 비민주 권력을 민주화시키기 위해 국민이 분노하고 언론이 국민의 분노를 용감히 보도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세월호 참사 보도로 불신의 수렁에 빠진 우리 언론에게 준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