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길환영 사장 스스로 물러나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편집위원회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5.14 15:00:24
공영방송 KBS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적이다. 세월호 보도에 대한 막내급 기자들의 반성문에서 촉발된 사태는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논란 발언과 관련한 유가족들의 항의 방문, 그리고 김 전 국장의 충격적인 길환영 사장 사퇴 요구 기자회견으로 이어졌다. 이어 청와대의 작품으로 알려진 길 사장의 사과까지 그야말로 어지러울 정도로 충격적인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시작된 KBS 장악 시도, 그리고 그 결과로 벌어진 공영방송 몰락의 결정판을 보게 된 것이다.
가장 먼저 지적할 점은 공영방송의 수장으로서 길환영 사장의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길 사장은 지난해 국정원 관련 인터넷 기사 삭제 파동 당시 지금까지는 물론 앞으로도 보도와 관련해 관여하는 일은 결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김 전 국장의 폭로로 거짓말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청와대 등 정치권의 외압을 최우선에서 막아야 할 사장이 도리어 공영방송의 독립성 침해의 선두에 섰다는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는 과정에서도 공영방송 수호의 정신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안산에서 KBS로 찾아온 유가족들을 밤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반면 다음날 청와대 정무수석의 요청이 있자 직접 청와대까지 달려가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영방송의 상식적인 수장의 모습이라면 결코 보일 수 없는 모습이자 길 사장의 존재 자체가 KBS 독립성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된 상황이다.
보도책임자를 비롯한 간부들의 책임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사장이 뉴스 큐시트와 관련해 보도국장에게 직접 연락하는 상황이라면 보도책임자 이하 다른 간부들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을 것이라는 의심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의심에 합리적인 대답을 해야만 한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가치 역시 잘 지켜지지 않았다. KBS는 공영방송이자 동시에 국가재난방송 주관방송사이다. 하지만 국가재난의 피해자를 끌어안고 위로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고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KBS 내부의 반성대로 정부 발표를 엄격히 검증할 언론인의 사명은 뒤로 한 채 왜 받아쓰기에만 급급했는지, 피해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뉴스가 아니라 관행과 현실에 안주한 뉴스는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 내부의 철저한 반성이 필요한 지점이다.
동시에 청와대에도 분명히 요구한다. 정치적 독립성 문제로 KBS가 내홍을 겪고 있는 와중에도 신임 KBS 보도국장에 청와대 연루 의혹을 강하게 받고 있는 인사가 임명됐다. 백운기 보도국장이 과연 임명 당일 만났다는 인사는 누구인지 그리고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그의 말대로 떳떳하다면 모든 사실을 분명히 밝혀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일단 KBS 내부에서 공영방송 본연의 모습 회복이라는 깃발이 다시 내걸리기 시작했다. KBS 기자협회가 길 사장의 퇴진과 정치적 독립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이것이 관철되지 않을시 제작거부에 돌입하기로 결정했다.
쉽지 않은 싸움이다. 하지만 침몰하는 KBS를 다시 국민의 품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싸움이다. 반드시 승리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