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환영 KBS사장 "대통령 뜻 거역하면 나도 살아남을 수 없다"
김시곤 전 보도국장 2차 폭로 파문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 입력
2014.05.16 23:15:06
“대통령의 뜻이니 그만 두라고 했다.”
“대통령 뉴스는 20분 안에 내보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다.”
“세월호 보도에서 해경에 대한 비판은 자제하라고 지시했다.”
공영방송 KBS 보도와 인사에 청와대가 직접 개입해 온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KBS의 보도와 인사에까지 간섭해 왔으며,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과 제작 자율성을 지켜야 할 길환영 사장은 사사건건 개입하며 보도 통제를 해왔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예상된다.
김시곤 전 보도국장은 16일 저녁 열린 KBS 기자협회 긴급 총회에 참석해 보도국장으로 일한 지난 1년 5개월 동안 청와대와 길환영 사장으로부터 여러 차례 보도 관련 외압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김 전 국장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대통령에 대한 비판 보도를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으며, 새누리당에 대한 비판 보도도 단 한 건에 그쳤다고 고백했다.
|
 |
|
|
|
▲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16일 긴급 기자총회에 참석해 지난 1년5개월 보도국장 재임 기간 청와대와 길환영 사장으로부터 보도 외압을 받아왔다고 폭로했다. 사진은 16일 밤 방송된 KBS '뉴스라인' 화면 캡처. |
|
|
김 전 국장은 길 사장이 특히 정치 뉴스에 직접 개입해왔다고 주장했다. 김 전 국장은 “길환영 사장이 대통령을 모시는 원칙이 있었다”며 “대통령 관련 뉴스는 러닝타임 20분 내로 소화하라는 게 그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 해외 순방 때는 리포트 수를 늘리라는 지시를 길 사장이 직접 했다고 그는 주장했다. 또 “여당의 모 의원이 TV에서 얘기하는 날은 반드시 전화가 왔다. 어떤 이유가 있건 그 아이템을 소화하라, 일방적으로 할 수 없으니까 야당과 섞어서라도 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도 해경에 대한 비판은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김 전 국장은 주장했다. 해경 비판을 자제해 달라는 청와대 요청을 김 전 국장이 따르지 않자, 사장을 통해 전달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국정원 대선 개입 보도에 대해서도 순서를 내리라는 등의 주문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9일 그의 보도국장직 사퇴에도 청와대 개입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길환영 사장의 사과와 보도국장 사퇴를 요구하며 KBS 앞에서 철야농성을 하던 지난 9일 새벽, 임원 회의실에서 사장과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사장은 정면 돌파할 것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9일 오후 2시 본부노조 주장을 반박하는 공식 기자회견을 하기로 확정했는데, 기자회견을 35분 남겨두고 사장이 긴급 호출, “BH(청와대)로부터 연락이 왔으니 회사를 그만 두라”고 종용했다는 것이다. 길 사장은 “잠시 3개월만 쉬면 일자리를 찾아보겠다”고 회유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건 대통령의 뜻”이라며 “거역하면 자기 자신도 살아남을 수 없다”면서 눈물까지 보였다고 김 전 국장은 전했다.
김 전 국장은 “너무도 부끄럽고 창피하고 참담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이 사람이 과연 언론기관의 수장이고, 이곳이 과연 언론기관인가 하는 자괴감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
 |
|
|
|
▲ KBS '뉴스라인'은 16일 자사 보도본부 부장단이 길환영 사장 사퇴를 촉구하며 보직을 총사퇴한 소식을 다뤘다. |
|
|
김 전 국장의 발언은 질의응답 시간을 포함해 약 1시간 반 동안 이어졌다. 김 전 국장은 “이 자리는 변명하는 자리가 아니다. 보도 독립성을 지키지 못한 점 용서를 빈다”고 말하면서 기자들을 향해 절을 하기도 했다. 또한 이날 길 사장 사퇴를 촉구하며 보직을 총사퇴한 보도본부 부장들에 대해서도 존경한다고 밝혔다.
김시곤 전 국장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수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비교한 발언으로 비난여론을 산 뒤 지난 9일 사퇴했다. 김 전 국장은 사퇴 기자회견에서 “길환영 사장이 보도에 사사건건 개입했다”고 폭로하며 길 사장 퇴진을 촉구했다. “길 사장은 대통령만 보고 가는 사람”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준우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날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 “사안이 굉장히 심각해 KBS에 최대한 노력을 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고 말해 김 전 국장 사퇴와 길 사장의 세월호 유가족 사과에 개입했음을 시사했다.
한편 KBS 기자협회는 이날 김시곤 전 국장의 발언과 보도본부 부장단의 총사퇴 소식을 밤 11시30분에 방송되는 ‘뉴스라인’에서 두 건의 리포트로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