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박한 KBS 파국…"길환영 사퇴" 한목소리
8개 지역총국 보도국장 보직 사퇴…28일 총파업 돌입 예정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 입력
2014.05.23 13:23:01
다 떠났다. 기자와 PD는 일손을 놓았고, 뉴스는 멈췄다. 사장이 임명한 부장과 팀장 등 보직 간부 300여명도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사장 직속 부서인 홍보실 팀장들도, 사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던 수신료현실화추진단, 국제협력실, 대외정책실 등의 간부들도 줄줄이 보직 사퇴 행렬에 동참하고 나섰다. 남은 것은 길환영 사장 자신뿐이다.
길환영 사장 퇴진과 KBS 정상화라는 구호 아래 KBS 구성원들이 한 몸, 한 뜻이 되었다. 길 사장은 자신에 대한 사퇴 요구를 ‘PD 사장에 대한 보도본부 기자들의 집단 반발’이자 ‘좌파 노조에 의한 방송 장악 의도’라고 폄훼하고 매도했지만, 틀렸다. 양대 노조의 총파업 예고에 대해 “정치적 선동” 운운하며 “엄중한 대응”을 천명한 지난 21일 특별 담화 이후, 사장 퇴진 여론은 전 직종, 전 부문으로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다. 사실상 모든 KBS 구성원들이 한 목소리로 길 사장 퇴진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길 사장이 사퇴하지 않는다면, 다음 주로 예고된 KBS 파업은 노조와 ‘사측’이 함께 하는 사상 초유의 “노사 파업”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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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노동조합(1노조),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와 KBS 기자·PD·경영·기술인·촬영감독협회 등 5개 직능단체가 23일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길환영 사장 퇴진과 박근혜 대통령 사과를 촉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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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노동조합(1노조),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와 KBS 기자·PD·경영·기술인·촬영감독협회 등 5개 직능단체는 23일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길환영 사장의 퇴진 거부로 KBS의 파국이 임박했다”며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KBS 사태가 악순환을 거듭하며 장기화되는 이유는 청와대 책임이 크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당장이라도 국민에게 사죄하고 KBS에 대한 부당한 간섭을 일체 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해야 한다”고 밝혔다.
KBS 새노조는 일찌감치 길 사장 퇴진을 위한 총파업을 예고하고 21일부터 찬반 투표를 진행 중이다. 첫날 이미 투표율이 50%를 넘는 등 사상 최고의 투표율과 압도적인 찬성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교섭대표노조인 1노조도 27일까지 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한다. 양대 노조는 오는 28일 KBS 이사회에서 길환영 사장 해임제청안이 부결될 경우 즉각 파업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조는 물론 300여명의 간부들까지 사장 퇴진 투쟁에 동참하면서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뉴스 뿐 아니라 다수의 프로그램이 결방되는 등 파국이 불가피하다.
권오훈 새노조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모든 것은 사사건건 KBS에 개입한 박근혜 대통령과 그 개입을 충실히 이행한 길환영 사장 때문”이라고 책임 소재를 분명히 했다. 권 위원장은 “우리의 요구는 딱 두가지, 국민의 방송 KBS를 정권에 헌납해온 길환영 사장은 물러나고, KBS를 청와대 산하기관쯤으로 생각해온 박근혜 대통령은 사과하는 것”이라며 “이것이 우리가 마지막으로 보내는 최후통첩”이라고 말했다.
이현진 1노조 부위원장은 “길환영 사장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보직간부들의 약 70%가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보직 사퇴했다. 길환영 사장은 좌파노조의 불순한 정치투쟁이라고 얘기하지만, 그가 임명한 사측 간부들조차 일제히 사장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사상 최초의 노사 파업이 임박해졌다”고 경고했다.
함철 새노조 부위원장도 “양대 노조가 총파업을 결의한 것은 총파업을 통해서라도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 방송에 개입해온 길환영 사장을 몰아내기 위해서”라며 “방송을 정상화하고 KBS가 새롭게 부활하는 가장 첫 번째 조건이 정권에 예속돼온 길환영 사장을 쫓아내는 것이라는 결의로 모든 방송을 중단하고서라도 반드시 길환영을 몰아내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제작거부 닷새째를 맞고 있는 KBS 기자협회 조일수 회장은 “매일 저녁 9시만 되면 마음이 아프다”며 뉴스 파행에 대한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다. 조 회장은 “우리도 정말 방송을 하고 싶다. 그런데 청와대와 사장이 뉴스 큐시트 순서를 조정하고 자막과 스크롤까지 개입하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방송을 제대로 할 수 있느냐”면서 “제대로 된 사장, 제대로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환경에서 마이크를 들기 위해 역설적으로 마이크를 내려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KBS PD협회도 길환영 사장을 회원 명부에서 제명하고, 23일 한시적 제작거부에 들어갔다. KBS PD 603명이 길 사장을 향해 “더 이상 PD들을 부끄럽게 하지 말라”며 연명으로 성명을 냈고, 20년차 이상 PD 113명도 사장에게 물러나라며 잇따라 성명을 발표했다. 홍진표 KBS PD협회장은 “‘심야토론’ 주제 선정과 패널 선정까지 일일이 개입하고 제작자율성을 짓밟아온 길 사장에 대해 선배들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KBS의 미래를 위해 용퇴할 것을 다시 한 번 당부하며 기자협회와 뜻을 같이 하도록 결의했다”고 밝혔다.
지역에서도 뜻을 같이 하고 있다. 지역총국 취재·촬영기자들로 구성된 전국KBS기자협회 300여명도 지난 21일부터 제작거부에 들어갔다. 9개 지역총국 중 8개 지역총국에서 보도를 책임지는 보도국장들이 보직을 사퇴했다. 송승룡 전국기자협회장은 “사실상 지역국 뉴스가 마비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KBS를 정상화시키고 공정한 방송으로 만들어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는데 모든 노조와 협회가 뜻을 같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