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만의 리그

[글로벌 리포트 | 미국] 손제민 경향신문 워싱턴특파원


   
 
  ▲ 손제민 경향신문 워싱턴특파원  
 
요즘 워싱턴에서 사건기자 때로 돌아간 듯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고국의 세월호 비극에 교민들도 감정적으로 반응했고, 지난 18일 미국 생활정보 공유사이트 ‘미시USA’ 회원들 주도로 열린 30여개 지역 동시집회는 아마도 재미 한인 역사상 가장 많은 인원이 나온 집회였을 것이다. 워싱턴에 지국을 둔 경향신문은 링컨기념관 앞 시위에 취재를 나갔다. 그런데 집회 주최자들은 공통적으로 기자의 질문에 자신의 이름을 밝히려고 하지 않았으며, 개별 인터뷰도 정중히 사양했다. 동료 특파원들 중 “경향신문 기자도 그런 대우를 받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집회에 나온 사람들에게는 경향신문도 이른바 ‘기성언론’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들은 언론의 취재 여부와 무관하게 자신들의 행사를 이어갔고, 행사 소식을 자신들의 미디어인 SNS나 미시USA 웹사이트를 통해 전파했다. 애초 이들은 뉴욕타임스 광고를 위한 모금 활동이나 미국 전역 동시 집회 같은 행사를 기성언론에 기대지 않고 자신들만의 미디어로 이뤄냈다.

이들의 캠페인 조직 과정 전반을 취재하며 받은 인상은 기성언론에 대한 불신이었다. 한국에서 유행 중이라는 ‘기레기’라는 말을 새삼 나 자신에게 대입해보게 됐다. 세월호 참사가 여과 없이 보여준 것은 전반적인 기성 제도에 대한 불신이다. 그중에서도 이 업계 종사자로서, 언론의 신뢰 추락이 가장 두드러져 보인다.

추락하는 것은 뉴스 수용자들의 신뢰뿐만이 아니었다. 이 즈음 미국의 보수적인 비정부기구 프리덤하우스가 내놓은 2014년 세계 언론자유지수 보고서에서 한국의 언론자유 지수는 지난해보다 4계단 떨어진 68위이고, 4년 연속 ‘부분적 자유’ 그룹에 머물렀다. 이 단체는 스스로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를 전세계에 전파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로 소개한다.

197개국 언론자유지수 조사를 총괄하는 프리덤하우스의 카린 카를카 국장에게 올해는 어떤 근거로 그런 결과를 도출했는지 들어봤다. 뉴욕에 있는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국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조사에서 언론자유국에서 부분적 자유국으로 내려간 뒤 기본적으로 두 가지 문제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정부의 인터넷 검열과 네티즌 처벌이고 다른 하나는 주요 방송사에 대한 정부의 통제 시도라고 했다. 이 단체는 2010년 당시 조사에서 한국의 언론자유도 추락을 주목할만한 변화로 규정하며 “점점 더 많은 온라인 게시글들이 친북적 또는 반정부적 견해라는 이유로 점점 더 많이 삭제되고 있다. 집권 보수정권은 기자들의 반발에도 주요 방송 매체에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들을 주요 보직에 앉히는 방식으로 언론사 경영에 간섭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카를카 국장은 세월호 참사 보도 과정에서 불거진 일들은 다음 보고서 작성에 고려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치적 자유 측면에서 한국의 신문들은 방송들에 비해 자유로운 편이지만, 경제적 자유 측면에서 대기업 광고주와 사주의 편집에 대한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신문 역시 언론 자유를 많이 누리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좀더 물어보고 싶었으나 그는 요즘 터키 정부의 항의가 쇄도해서 그 일에 집중해야 한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프리덤하우스의 이번 조사에서 터키는 처음으로 부분적 자유국에서 최하그룹인 비자유국으로 떨어졌다. 터키는 최근 최악의 탄광사고로 300여명이 숨져 정부 비판 시위가 이어지고 있으며,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에 대한 통제 논란이 한국보다 더 거세게 일고 있다.

언론의 신뢰와 언론 자유가 정확히 어떤 상관관계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정부와 기업 권력에서 자유롭지 않은 언론이 많은 수용자들의 신뢰를 받기 어렵다는 점은 분명하다. 솔직히 말해 나는 기자로서 검열에 노출돼 있다든지, 언론 자유가 심각하게 제약 당하고 있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그것은 아마 한국의 많은 기자들이 갖고 있는 생각일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데, 왜 세상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보는 걸까. 우리가 무감각해진 것일까, 눈높이를 어디에 맞추고 있어야 하는지 망각하고 우리만의 리그에 빠져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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