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참사 막을 '마지막 골든타임'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94.3%. KBS 길환영 사장이 받은 성적표다. 공영방송 사장으로 명예스런 신뢰의 표가 아닌 불신임의 표다. KBS 새노조가 사장 사퇴를 요구하는 찬반투표에서 압도적인 표로 파업을 가결했다. 1노조도 83.1%로 파업을 찬성했다. 26일 길 사장 해임제청안을 상정한 KBS이사회는 오늘 표결을 진행한다. 어떤 결론을 낼지 주목된다.

언론인들도 청와대의 KBS 보도통제 의혹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전국 63개사 5623명의 언론인들은 선언문을 통해 “청와대의 방송장악 보도통제 의혹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책이 마련될 때까지 가만히 있지 않고 행동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길환영 사장을 향한 사퇴요구가 안팎에서 거세지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길 사장의 상황인식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때가 되면 기쁜 마음으로 물러날 것” “정치적 선동과 폭력에는 절대 사퇴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며 퇴진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길 사장이 말하는 물러날 ‘때’가 청와대의 지시를 기다리는 것이라면 최소한의 명예를 지키며 물러날 ‘때’를 놓치는 것이다.

특히 청와대의 보도통제 의혹이 불거졌는데도, 이를 밝히라는 요구에 ‘선동과 폭력’의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데는 차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파업참가자에 대한 고소고발과 민형사상 손해배상을 무기로 버티기 작전을 계획한다면 포기하는 것이 옳다. 그것은 곧 공영방송 KBS가 국민의 편이 아닌 ‘정권의 입’임을 자인하는 대국민 신고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6·4지방선거까지만 버티면 월드컵 여론에 KBS 구성원들이 제풀에 지칠 것이라고 혹여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 압박은 길 사장에게 되돌아올 부메랑이다.

길환영 사장은 청와대의 보도협조가 보도통제가 아니었는지 언론인으로 되새겨봐야 한다. 왜 후배들이 분노하는지, 지키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이 KBS를 제자리에 올곧게 세우려는 애정어린 충고가 아닌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편에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 청와대가 어떻게 공영방송을 길들이려 했는지 명명백백히 털어놔야 한다. 그 길이 길 사장이 언론인으로 자존심을 지킬 마지막 기회다.

박근혜 정부에게도 묻는다. 김시곤 KBS 전 보도국장이 폭로한 내용을 보면, 정권의 보도간섭이 일상화돼 있는데 정말로 ‘보도협조’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정보원이 언론사에 상주해 정부비판 기사를 빼던 유신시절도 아닌데, 보도통제라는 말이 얼토당토않다고 보는가. 아니면 구원파처럼 ‘우리가 남이가’ 말을 건네며, 이심전심 통한 것인가.

어떤 변명도 공영방송을 사영방송인양 관리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방송을 정부의 감시견이 아닌, 충견으로 두려고 했다면 그것이 바로 대통령이 말한 ‘적폐’가 아닌가. 정권의 핵심부는 ‘적폐’에 젖어 있는데, 다른 사람을 향해서만 적폐를 제거하겠다면 누구도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 정권 맘대로 방송을 좌지우지 하겠다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 적폐척결의 첫발이다.

박 대통령은 이미 대선공약으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내세웠다. 더 이상 무엇을 주저하는가. 공영방송에게 제대로 된 설 자리를 찾아줄 절호의 기회다. 국민에게 진심을 전해주고 싶다면, 세월호의 아픔을 국민과 나누고 싶다면, KBS 기자들의 외침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대답해야 한다. 공영방송 KBS는 국민들의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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