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적 자위권과 아베 총리

[글로벌 리포트 | 일본] 이홍천 게이오대 교수


   
 
  ▲ 이홍천 게이오대 교수  
 
아베 신조 총리가 지난달 15일 평화헌법 해석변경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서 한국정부와 언론들은 우려와 불안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게 되는 것은 한국에게 있어서 반가운 일은 아니다. 일본이 다시 재무장하는 것은 아닐까, 한반도 유사시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여지를 열어 놓는 것은 아닐까, 과거사 반성이 먼저 아니냐며 한국 언론의 비난적인 논조는 끊이지 않는다. 집단적 자위권으로 일본 여론이 쪼개지고 있다며 ‘자위권행사=전쟁’이라는 아사히 신문의 보도를 소개하거나, 전쟁터에 국민을 보내는 길이 열렸다, 70년 만에 전쟁이 가능한 국가가 되겠다고 선언했다는 등 비판적인 일본 언론을 전하기도 했다.

이번 사태로 자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의 얼굴색이 말이 아니다. 평화주의를 당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는 공명당으로서는 전쟁에 말려들 소지가 있는 집단적 자위권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아베 총리가 제시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요구되는 사례의 대부분이 개별적 자위권으로 대응 가능하다는 입장으로 에둘러 반대의사를 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해지면 무엇보다 곤란한 것은 자위대일 것이다. 집단적 자위권이 행사된다고 해도 현장에 출동하는 것은 이를 추진했던 아베 총리도, 집단적 자위권을 지지하는 자민당 의원들도 아니다. 명령이 떨어지면 현장에 나서야 하는 것은 일선 자위대원들이다. 자위대가 올해로 창설 60주년을 맞이했다. 그런 자위대가 지난 60년 동안 가장 큰 업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치안출동이나 전쟁으로 번질 수 있는 방위출동을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60년대 학생운동이 격렬했을 때도 정치권의 유혹을 뿌리치고 출동하지 않았고, 일본의 대표적인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가 1970년 11월 자위대의 반란을 조장하며 육상자위대 주둔지에서 자살했을 때도 동요하지 않았다. 1995년 옴진리교의 사린가스 테러가 발생했었을 때도 자위대는 출동하지 않았다.

미국에 버림받을 지 모른다는 논리가 아베 총리가 집단자위권 행사에 집착하는 이유다. 미국에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는 미·일 동맹을 강화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도 미국을 군사적으로 도울 수 있는, 즉 미국을 위해 피 흘릴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의 미·일 동맹관계가 미국이 일본을 위해서 일방적으로 피를 흘리는 비대칭 관계이기 때문이다. 미·일 안보 관계의 쌍방향성을 높여서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 전후체제를 벗어나는 것이 아베 총리의 신념이다.

한국의 우려와는 달리 아베 총리의 주장에 대한 국제적인 반발은 많지 않다. 지난달 30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한 아베 총리는 기조연설을 통해 특정 국가를 명시하지 않은 채 적극적인 평화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중국군 부참모총장이 역사문제로 아베 총리를 비판했지만 아베 총리의 준비된 답변을 뛰어 넘기는 역부족이었다. 주최측은 중국군 국방부장이 참석한다면 이틀째 세션의 대부분을 할애할 예정이었지만 중국은 이런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일본 국내의 반발이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집단적 자위권을 추진하는 아베 총리의 의지가 줄어들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국과 아세안, 일본과의 대립으로 악화되고 있는 아시아지역의 안보환경이 아베 총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것도 아베 총리가 눈치를 봐야 할 상대를 줄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북한과 일본이 납치문제를 재조사하기로 합의한 것도 집단자위권에 대한 여론의 반발을 줄이는데 한몫하고 있다.

사태가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 국제여론과 국내여론을 다루는 아베 정권의 능력이 뛰어난 것인지, 아베 정권의 운이 좋은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미디어를 의식한 발언과 퍼포먼스도 치밀한 준비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올해말에 미·일 안보 가이드라인(미·일 방위협력지침) 협의가 열린다. 각의에서 집단자위권이 결정되지 않으면 협의할 내용이 없어진다. 역사, 안보, 평화, 영토문제등이 뒤섞인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미디어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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