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과 월드컵, 그리고 '마라카나조'악몽
[글로벌 리포트 | 남미]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6.18 14: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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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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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하고 부실한 준비를 탓하는 국내외의 따가운 시선과 공적 자금을 낭비하지 말라는 시위대의 비판 속에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은 막이 올랐다. 7년의 준비 기간에 국제축구연맹(FIFA)과 늑장공사 문제로 끊임없이 갈등을 빚고, 월드컵 반대 시위가 1년 넘게 계속되는 것은 아마도 역대 대회 가운데 브라질이 유일할 것이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월드컵에 대한 관심이 다른 대회보다 줄어든 것은 아니다. FIFA 자료를 기준으로 전체 330만여장의 입장권 가운데 개막 1주일 전까지 296만여장이 판매됐다. 월드컵 기간 국내외 관광객이 370만명을 넘을 것으로 보여 남은 입장권은 대회 기간 모두 팔려나갈 것으로 보인다.
경기는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있다. 대회 초반 경기당 평균 3골을 훨씬 넘는 화끈한 골 잔치로 축구팬들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고 있다. 이는 앞선 5차례 월드컵의 평균 득점을 뛰어넘는 기록이다.
개막일인 지난 12일을 고비로 월드컵 반대 시위는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본선 경기가 열리는 12개 도시를 중심으로 아직도 시위가 계속되고 있지만 개막과 함께 목소리가 작아진 것은 확실하다. 모든 것은 월드컵 이후로 미뤄졌다.
브라질 대통령은 “월드컵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던 사람들이 월드컵을 즐기고 있고, 경기장 늑장공사를 걱정했으나 모든 것이 정상이다. 공항은 정상적으로 가동하고 있고, 우려했던 전력 제한공급 사태도 발생하지 않았다”며 한결 여유로운 표정이다.
흔히 브라질을 ‘축구의 나라’라고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 대한 브라질 정부와 국민의 관심은 상상 이상이다. 언론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월드컵 열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몇 가지 표현을 들여다 보는 것도 월드컵의 재미를 더해준다.
브라질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말에 ‘마라카나조(Maracanazo)’라는 게 있다. 스페인어로 ‘마라카낭의 비극’을 뜻하는 이 단어는 1950년 브라질 월드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대회 결승에서 우루과이를 만난 브라질은 후반에 선제골을 넣었지만 동점 골과 역전 골을 내주며 역전을 허용했다. 브라질 입장에서는 당연히 가져왔어야 할 우승컵을 우루과이에 내줬다. 당시 경기가 리우데자네이루 시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열렸기 때문에 마라카나조라는 말이 생겼다. 마라카나조는 지금까지도 브라질 국민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이번 대회에서 ‘폰치노바조(Fontenovazo)’라는 새 표현이 등장했다. ‘폰치노바의 비극’이다. B조 예선에서 디펜딩 챔피언이자 ‘무적함대’로 불리는 스페인은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에 1-5로 충격적인 참패를 당했다. 이 경기가 브라질 북동부 사우바도르 시의 폰치노바 경기장에서 열렸기 때문에 이런 그럴듯한 표현이 나온 것이다. 한 축구 칼럼니스트는 “브라질이 64년간 마라카나조에 시달린 것처럼 스페인도 폰치노바조를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엑사 캄페앙(Hexa Campeao)’, 포르투갈어로 여섯 번째 우승을 뜻한다. 요즘 브라질 국민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다.
브라질 국민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영광의 재현을 기다린다. 당시 브라질은 호나우두-히바우두-호나우지뉴 삼각 편대를 앞세워 월드컵 통산 다섯 번째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번엔 ‘축구황제’ 펠레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네이마르가 주인공이 돼주길 바라고 있다.
브라질의 통산 6회 우승과 마라카나조는 이번 월드컵 최고의 흥행 키워드다. 브라질이 과연 이번 대회에서 여섯 번째 우승을 달성하면서 마라카나조의 악몽을 씻어낼 수 있을까?
브라질 전체가 월드컵에 열광하는 데는 이민자 국가라는 특성도 작용하는 것 같다.
포르투갈,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그리스 등 유럽 국가 이민자들은 브라질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아랍이나 아프리카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도 상당한 규모의 이민자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같은 대륙의 남미 국가들은 굳이 말할 것도 없다.
이 때문에 브라질 대표팀이 출전하지 않는다고 해서 경기장이 썰렁해지는 법은 없다. 이번 대회 본선에 진출한 32개국 모두 응원단이 없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브라질은 이번 대회의 캐치프레이즈를 ‘월드컵 중의 월드컵’으로 내걸었다. 월드컵 통산 여섯 번째 우승으로 축구 지존을 확인하고, 축구를 통해 인류화합의 장을 만들어보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말했다.
7월13일(브라질 시간)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결승전이 이런 감동으로 채워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