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KBS 사장 후보들에게 말한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편집위원회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7.02 14:57:38
길환영 사장이 해임된 후 KBS가 보여준 모습은 우리 사회에 공영방송의 존재 의의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일깨워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창극 보도와 국외 소재 재벌들의 자산 추적 보도는 권력과 자본에 대한 비판과 견제라는 공영방송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결과였다.
또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KBS 월드컵 중계 방송 사상 처음으로 시청률 1위를 질주하는 쾌거를 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로 KBS가 처한 상황이 녹록치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KBS의 보도에 대해서 직접적인 불만을 수시로 털어놓은 집권 여당을 비롯해 자사 출신 총리 후보자 낙마에 대한 보수 언론의 비이성적 대응은 기득권 세력이 공영방송을 얼마나 불편해하고 견제하려 하는지도 재확인시켜줬다.
이처럼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는 상황에서 KBS 사장 공모가 시작됐다. 전임 사장의 임기를 이어받을 새 사장은 이런 복잡다단한 상황도 해결해야 할 뿐 아니라 수신료 인상과 지상파 위기 등 켜켜이 누적돼 왔던 문제 역시 해결해야만 하는 막중한 사명을 띠고 있다.
그렇다면 KBS 신임 사장에는 어떤 사람이 적합할까? 우리는 얼마 전 KBS 내부 구성원들의 자체 조사 결과에 주목하고자 한다. 모두 1561명이 응답한 조사에서 차기 KBS 사장의 가장 큰 조건으로 ‘특정 정당이나 정파에 치우치지 않고 정치적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자’라는 대답이 77%에 달했다. 경영능력은 12%에 불과했고 소통능력 역시 4%에 그쳤다. 차기 사장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 역시 보도 독립성과 제작 자율성이라는 대답이 69%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결국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공영방송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부터 지켜달라는 것이 구성원들의 요구인 셈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방송 및 통신 관련 정부 규제기관에 몸담았거나 선거에서 후보자의 당선을 위해 자문이나 고문 활동을 한 후 3년이 경과하지 않은 자 등 7가지 세부 자격 요건까지 마련해 발표했다.
하지만 얼마 전 마감한 KBS 사장 응모 결과는 과연 구성원들의 그러한 요구가 실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과거 부적격 인사로 KBS 내외부에서 논란이 된 인사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 홍성규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은 이미 지난 2012년부터 KBS 양대 노조로부터 불가 판정을 받은 인물이며, 권혁부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부위원장은 재임 중 끊임없이 편향심의 논란을 일으킨 인사이다. 여기에다 녹취록 파동의 강동순 전 KBS 감사에서부터 기자협회의 불신임을 받고 물러난 고대영, 이화섭 전 보도본부장까지, 한마디로 그동안 KBS를 국민이 아닌 정권에 헌납하기 위해 기여한 인사들이 대거 응모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들 중 차기 KBS 사장이 선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KBS가 늘 비교대상으로 삼는 영국의 BBC는 정치권력이 사장을 임명하는 것까지는 KBS와 비슷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와 가장 다른 점은 사장으로 임명되는 순간부터 임명권자의 품을 벗어나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라는 BBC 본연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국민에게 존경받는 BBC를 만든 가장 핵심이자 지금의 KBS 사장 후보자들이 가장 명심해야 될 가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