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곡차곡 쌓인 데이터…종횡무진 손놀림으로 그래픽뉴스 재탄생

[기자25시](14)연합뉴스 그래픽뉴스팀 박영석 기자



   
 
   
 
대학서 시각디자인 전공…기자 ‘새로운 도전’
인력충원 거의 없는 부서 특성상 7년간 막내생활
그래픽뉴스는 수치가 생명…데이터 비교·확인 거듭
2008년 이달의 기자상 수상, 가장 기억에 남아


“사람들이 뉴스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정보를 재가공하는 게 이 일의 가장 큰 매력 아닐까요?”
‘읽는 기사’가 아닌 ‘보는 기사’를 만드는 기자들이 있다. 수백 자의 원고를 단 한 장의 그림에 녹여내는 이들은 바로 ‘그래픽 기자’. 그들 중에는 2002년 한국기자상(한일 월드컵 특집 그래픽뉴스)과 이달의 기자상(2008년 ‘한국 최초 우주인 관련 그래픽뉴스 특집’, 2011년 ‘2018 평창올림픽경기장 계획’ 등) 수상 등 화려한 전력을 자랑하는 연합뉴스 그래픽뉴스팀이 있다. 올해 11년차를 맞은 박영석 기자의 하루를 통해 그래픽뉴스의 최전선을 들여다봤다.


축구팬들의 안타까운 탄식이 서울 광화문 광장을 메웠던 지난달 27일 새벽 5시. 2014 브라질월드컵 16강 진출 티켓을 놓고 우리나라와 벨기에의 마지막 승부가 벌어졌던 그날, 일찌감치 출근 도장을 찍은 연합뉴스 그래픽뉴스팀 박영석 기자의 눈은 TV 중계에 꽂혀 있었다.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월드컵은 신문·방송·통신을 막론한 언론사의 ‘빅 이벤트’다. 각사 편집국과 보도국이 전열을 가다듬는 가운데, 연합뉴스 그래픽뉴스팀도 예외일 수 없다. 박 기자는 이미 지난 1월부터 2014 브라질월드컵을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월드컵마다 각국 유니폼 디자인이 다 바뀌거든요. 유니폼 사진을 일일이 구해서 전부 수작업으로 그려 넣었던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세월호 참사와 6·4 지방선거 등 유난히 굵직한 뉴스가 많았던 올 초. 박 기자는 30분, 1시간씩 짬이 날 때마다 월드컵 관련 데이터를 꾸준히 구축했다. 이렇게 사전에 작업한 데이터와 FIFA에서 나오는 공식자료를 토대로 그날그날의 경기일정과 경기결과, 전략분석 기사를 내놓는 것이 스포츠 분야를 담당하는 박 기자의 몫이다.

오전 6시30분이 지나자 장성구 팀장을 시작으로 그래픽뉴스팀 기자들이 속속 사무실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박 기자는 경기 후반전을 지켜보며 후배 장예진 기자와 조간신문을 스크랩했다. 팀원들이 담당 분야의 그래픽뉴스를 편하게 찾아볼 수 있도록 정리하고, 그날 조간신문에 연합뉴스 그래픽이 몇 건 전재됐는지 집계하기 위해서다.



   
 
  ▲ 지난달 27일 오전 한국과 벨기에의 경기가 끝난 후 ‘2014 브라질월드컵 한국 조별리그 경기분석’ 그래픽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박영석 기자.  
 

그 사이 경기 종료 휘슬이 불었다. 벨기에에 1:0으로 패한 대한민국은 H조 꼴찌 확정. 아쉬워할 틈도 없이 박 기자는 다시 작업에 매진했다. 앞선 G조 경기와 H조 경기를 끝으로 16강 대진이 최종 확정됐기 때문이다.

그의 모니터에는 FIFA 자료가 어지럽게 복사돼 있었다. 각종 수치로 빼곡하게 채워진 복잡한 자료를 쉽고, 깊이 있게 재가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표와 그래프, 그림과 사진을 이용해 방대한 양의 정보를 정제된 하나의 그래픽으로 만들어야 한다.

태블릿모니터 위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는 박 기자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그는 그래픽 작업이 낯선 기자에게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인 ‘일러스트레이터’를 설명했다. 포토샵은 점을 기반으로 이미지를 생성하거나 편집하지만, 일러스트레이터는 이미지를 선으로 구성하기 때문에 아무리 크게 확대해도 ‘깨지는’ 현상이 없다. 박 기자는 “그래픽을 송고 받은 신문사들이 이미지를 재편집하는 데도 용이한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8시30분까지 ‘2014브라질월드컵 27일 경기결과’, ‘30일 경기일정’, ‘조별리그 최종순위’ 등 세 건의 그래픽이 박 기자 바이라인으로 출고됐다. 팀장의 데스킹을 거치는 과정에서 박 기자는 데이터 원본과 그래픽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팩트를 체크했다. 그래픽뉴스는 ‘수치’가 생명이기 때문에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지 않으면 실수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꼼꼼함은 새로운 기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박 기자는 곧장 세월호 참사를 떠올렸다. 사고 발생 초기, 생존자 명단을 살펴보던 박 기자와 이재윤 기자는 명단에 동일인이 중복 기입됐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했다.

“그래픽 작업을 위해 세월호 탑승자 명단과 생존자 명단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생존자 명단에 이름과 생년월일이 같은 동일인이 중복 기재됐다는 걸 알았죠. 사회부에 바로 토스해서 기사화 됐어요.”

기자에게 보여준 세월호 도면에는 탑승자·실종자 수와 구조현황이 빼곡히 적혀 있었고, 책상 한편에는 당시 수집한 자료가 두툼하게 쌓여 있었다. 그래픽뉴스팀에게도 세월호 참사는 아직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볼 점유율이 중요하지 않을까. 누가 경기의 흐름을 주도했는지 보일 수 있게.”
장 팀장이 ‘한국 조별리그 경기 분석’을 작업 중인 박 기자에게 조언을 건넨다. 러시아와 알제리, 벨기에 등 각각의 경기에서 한국팀이 어떻게 경기를 이끌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기사다. 박 기자는 이번에도 FIFA의 자료를 토대로 각 경기별 볼 점유율, 공격비중, 파울, 코너킥, 경고 등을 그래프와 그림에 녹여냈다.

몇 번의 데스킹과 수정을 거친 뒤 오전 11시16분 경기 분석 그래픽이 송고됐다. “벌써 오전 시간이 다 갔네요.” 박 기자가 출근 여섯 시간 만에 나른한 기지개를 켰다. 



   
 
  ▲ 연합뉴스 그래픽뉴스팀 기자들이 회의를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날 점심은 휴가로 자리를 비운 반종빈 기자를 제외한 그래픽뉴스팀 기자들이 모두 자리를 함께 했다. 박 기자는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다보니 사이가 돈독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픽뉴스팀은 현재 팀장 1명과 기자 5명, 인턴기자 2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일반 취재기자와 달리 ‘전문 기자’이기 때문에 부서 이동이 거의 없는 편이다. 담당 분야가 확고한 만큼 자부심도 크다.

장 팀장은 “기자들이 타자 속도로 고민하지 않듯, 그래픽 기자도 그림으로 고민하지 않는다”고 했다. ‘비주얼’보다는 ‘양질의 데이터’가 우선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표나 일지도 그래픽적인 의미는 가질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실의 나열’ 수준에 그치지 않고 그래픽 자체로 ‘생명력을 지닌 기사’가 돼야 한다는 의미다.

최근 각 언론사들이 인포그래픽 열풍에 합류하며 그래픽뉴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인포그래픽도 그 종류가 여러 갈래로 나뉜다. 빅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한 작업은 상대적으로 순수한 인포그래픽의 영역이다. 영국 가디언과 미국 뉴욕타임스 등이 시도하고 있는 데이터 시각화가 바로 그것. 반면 그래픽뉴스는 언론사들이 이전부터 전통적으로 해오던 뉴스 전달 수단이다. 전자가 심층·기획의 측면이 강하다면 후자는 신속성·시의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팀원들은 아이템 선정과 자료 확보, 내용 분석, 그래픽 제작 등 취재과정 전반에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현장에 직접 나가는 경우 가장 생생한 정보가 나오지만, 그래픽뉴스는 ‘날 것’이 아닌 ‘2차 정보’인 만큼 검색환경을 최대한 활용하는 편이다. 이 때문에 그래픽뉴스팀 기자들은 모두 ‘검색의 달인’이다. 특정 지역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포털 사이트가 제공하는 ‘거리 뷰’만을 이용해 지도를 만드는 수준. 특히 장 기자는 세월호 참사 당시 구글링을 통해 세월호 도면을 입수하기도 했다. 물론 일선 취재기자들의 협조를 구하기도 하지만 이들에게도 나름의 ‘현장 논리’가 작용하는 만큼 항상 한계에 부딪히곤 한다. 그만큼 그래픽 기자들은 취재, 편집을 아우르는 ‘멀티형 인재’가 돼야 한다.

점심시간의 달콤한 휴식이 끝나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선 박 기자가 여전히 분주하다. 이날 경기는 모두 끝났지만 ‘월드컵 대진 현황’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7·30 재보선 여야 출마 예상자’ 작업도 남아 있다. 박 기자는 스포츠와 함께 정치 분야도 담당하고 있다. 이미 오전 중에 인턴기자에게 부탁해 조간신문에 나온 출마 예상자 명단을 정리해놓은 상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한 박 기자. 수정을 거듭하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다. 각 조간신문 별로 출마 예상자가 다른 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후보자 등록 현황은 7월10일 이후에야 조회가 가능하다고 나왔기 때문이다. 예비후보자 명단도 모호하긴 마찬가지. 아직 ‘유력 후보자’들은 명단에 올라있지 않았다. “C일보에는 이 사람들이 출마한다고 하는데 다른 신문에는 없거든요. 그 반대인 경우도 있고요. 특히 경기 수원이랑 김포가 많이 다르네요.” 박 기자가 장 팀장에게 명단을 내밀며 묻자 “정치부나 전국부에 연락해서 확인해봐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장 팀장과 박 기자가 직접 명단을 들고 사실 확인에 나섰다. 전국부와 정치부에 협조 요청을 하기 위해서다. 전국부에서는 “공천은 중앙당에서 하기 때문에 지방에서는 확인이 어렵다”는 답변이, 정치부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오늘 후보자 공모를 마감하니 전략공천자까지 포함해서 저녁에 표를 만들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박 기자가 작업 중이던 출마예상자 명단은 이날 당직을 맡은 장 기자가 마무리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새벽부터 이어진 강행군이 마무리될 기미를 보인 시각은 오후 4시쯤. 박 기자가 서서히 여유를 찾는 시간이다. 그는 언제부터 ‘하루살이 기자인생’을 예감하고 있었을까.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던 대학생 시절까지만 해도 박 기자는 기자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2004년 선배의 권유로 지원한 연합뉴스 그래픽뉴스팀에 덜컥 합격했지만 기자로 활동하는 동기나 선배가 거의 없었다. 그에게 언론사는 ‘맨땅에 헤딩’하는 수준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러나 박 기자는 “저의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이 다행히 그래픽기자의 업무와 잘 맞는다”고 했다. 장 팀장도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인포그래픽적인 능력이 탁월한 기자”라고 치켜세운다.

디자인 전공자들은 기자 생활에 적응하는 데 두 배의 시간이 걸린다는데, 박 기자는 생각보다 부침이 심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인력 충원이 거의 없는 부서인 탓에 7년 동안 막내생활을 한 게 고충이라면 고충이다. 하지만 막내로 고군분투 중이던 2008년 김토일, 전승엽 기자와 함께 ‘한국 최초 우주인 관련 그래픽뉴스 특집’으로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한 건 큰 수확이다. 지금도 그때 당시를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는다. 이제는 후배 두 명을 둔 선배가 된 박 기자. 그는 끝까지 그래픽 기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찬찬히 나아가겠다는 생각이다.

“미래를 위해서 저축한다는 핑계로 지금 굶고 사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목표를 멀리 보다 보면 현재의 행복을 못 찾을 수도 있죠. 지금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이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 더 행복한 미래가 올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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