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소임을 생각한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오리무중이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헷갈린다.
세월호 참사 100일이 지났건만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 제정은 제자리걸음이다. 유가족과 시민들이 주말마다 모여 행진을 하고 단식까지 해 봐도 달라진 게 없다.

변죽만 요란하다. 여기를 봐도 유병언, 저기를 봐도 유병언이다. 유병언 일가 일망타진이 세월호 참사 정국의 최종 종착지라도 되는 양 호들갑이다.

유병언 사망을 계기로 불거진 검·경의 한심한 모습은 세월호 참사 대처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형편없는 수준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결과적으로 이미 죽은 사람을 잡겠다고 쫓아다닌 꼴이니 공권력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도대체 정부 발표를 믿을 수 없다”고 해도 정부로선 할 말이 없게 됐다. 그마저 사망 원인은 알 수 없다고 하고 사망 시점도 추정만 할 뿐 오락가락이니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양상이다. 이는 다분히 정부가 자초한 결과다.

유병언 사망을 둘러싼 의혹도 의혹이지만 세월호 참사가 터진 직후 정부가 모든 비난의 화살을 유병언 일가로 돌릴 때부터 신뢰 하락은 예견됐다. 언론도 연일 유병언과 구원파 관련 소식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데 일조했다.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부터 ‘공적’으로 지목돼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킨 유병언은 공교롭게도 참사 100일에 맞춰 또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이번에도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의 눈물과 특별법 제정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묻히고 대신 유병언 시신 관련 뉴스가 언론을 장식했다. 장남과 호위무사가 검거되자 ‘한 칸짜리 오피스텔에서 3개월 동안 둘이서 뭐 했나’ ‘끝까지 장남 지킨 미녀 호위무사는 누구’ 등의 가십성 기사가 쏟아졌다.

구원파 신도들이 잇따라 검거되고 미흡한 변사 처리와 부실한 별장 수색 등의 이유로 수사 간부가 경질되거나 사퇴하는 등 문책이 이뤄졌지만 이 정도로 마무리될 사안이 아니라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희생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세월호를 기억하고 달라진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언론의 노력은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언론은 나라 전체가 왜 온통 유씨 일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됐느냐에 대한 문제 제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본질을 희석시키려는 정부·권력의 의도를 짚고 제 궤도에 올려놓아야 한다. 그런 다음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대처 과정의 문제점, 재발방지책 등을 차근차근 짚어야 한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요구 목소리를 일부 정치권의 7·30 재·보궐선거 승리를 위한 전략으로 몰아가는 언론의 보도를 보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정부 의도대로 시진핑 중국주석을 대서특필하고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경기부양책을 집중 보도하는 데 모든 취재력을 투입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국익’을 앞세워 여론을 통제하고 입맛대로 이슈를 끌고 가려는 정부의 유혹에 맞서 진실과 비판, 견제라는 언론 본연의 사명을 되새길 수 있어야 기자다운 기자요, 언론다운 언론이다.

우리는 정보는 넘치지만 그 정보가 어디까지 진실인지 여부는 알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만큼 언론의 역할이 중대한 시기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커질수록 진실한 보도를 기대하는 국민들의 열망은 커진다. 굴곡의 역사를 헤쳐 온 한국 언론사가 입증하고 있다. 투옥, 해직을 마다하지 않고 올곧은 보도를 하겠다는 언론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 언론의 민주주의가 이만큼 성장했다. 언론인들이 다시금 정신을 바짝 차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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