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2시간 취재 강행군 …선배에게 깨지는 건 일상

지역 수습기자들의 솔직한 수다

   
 
   
 
힘들고, 지치고, 눈물도 나지만 “열심히 해보자” 다짐


“기자를 준비하던 시절에는 24시간 기자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언제 어디라도 달려 나갈 준비가 돼 있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쉽지 않았다. 이제는 8시간만 기자를 하고 싶다.”
이른 새벽부터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마와리(경찰서를 돌면서 취재하는 것)’를 돌아야 하는 수습기자 생활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특히 열악한 취재여건 속에 고군분투하는 지역 수습기자 생활은 더욱 그렇다. 본보는 지역에서 수습 생활 중인 신문·방송·통신사 기자 5명을 만났다. 그들의 애환을 들으려는 심산이었다.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는데다 각 지역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이들을 한 자리에 모으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당일에 겨우 약속을 잡고 해당 지역까지 내려가 늦은 밤 술자리에서 얘기를 들었다. 그마저도 안 되면 구글 행아웃(일대일 또는 그룹으로 무료 화상 통화를 할 수 있는 메시지 앱)으로 화상채팅을 했다.
일단 만나면 그동안 품어왔던 말들이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공통적으로 나온 말은 ‘우리는 힘들게 살고 있다’였다. 각각 꽃가루, 모닝사과, 비상구, 왕돈까스, 주먹밥이라는 예명을 쓴 지역 수습기자 5명의 좌충우돌 수습생활기를 정리했다.


사회=수습기자 생활은 어떤가.
주먹밥=어딜 가도 수습이라 힘들다. 출입처를 가도, 내근을 해도 눈치가 보인다. 선배한테 깨지는 건 이제 일상이다.

모닝사과=욕 안 듣는 날이 어색할 정도로 깨진다. 보고할 때 매번 혼난다. 보고거리가 없어도 혼난다. 사건이 없어도 내 잘못이다.

비상구=엄청난 욕을 듣는다. 욕받이 무녀가 된 것 같다.

주먹밥=난 하다못해 선배가 아닌 경찰한테 혼난 적도 있다.

모닝사과=기사를 쓸 때 혼나는 건 이제 당연하다. 정말 억울할 때는 선배 의견에 따라 기사를 썼는데 데스크가 나한테만 뭐라고 할 때다.

주먹밥=국장선배랑 사수 선배 말이 다를 때도 있다. 누구 말이 맞는지 헷갈린다.

왕돈까스=기사를 쓰면 선배들이 3번 정도 고친다. 3번째 고쳤을 때는 더 이상 내가 쓴 기사가 아니다. 거의 인수분해 수준으로 해체된다. 기사를 고치는 매 단계마다 혼난다.

꽃가루=통신사 기자라 기사를 빨리 넘겨야 한다. 보통 길바닥에 앉아 마감을 한다. 한 번은 식당 아주머니가 그런 내가 불쌍했는지 들어와서 일하라며 물까지 주셨다. 눈물이 핑 돌더라.

주먹밥=일이 다가 아니다. 일이 끝나면 술이라는 큰 산이 기다리고 있다.

왕돈까스=정말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대중없이 마신다. 면접 볼 때 술 잘 마시냐고 괜히 물어본 게 아니었다. 술 마신 다음날이 정말 힘들다. 술이 안 깨서 꾸벅꾸벅 졸면 그것 때문에 또 혼난다. 술 좀 그만 먹고 싶다.

사회=지역 수습기자라서 더 힘든 점도 있나?
모닝사과=모든 지역 행사에 차출되는 것 같다. 가끔씩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군가 하는 생각이 든다.

주먹밥=지역은 서울처럼 마와리를 힘들게 돌지는 않는다. 근데 그게 좋지만은 않다. 경찰서 직원들이 기자를 낯설어한다. 경찰서를 가면 왜 찾아왔냐고 물어볼 정도다. 한 번은 지구대까지 전화해 취재를 한 적이 있는데 대뜸 ‘당신이 어떻게 기자란 걸 확인하느냐’고 물어보더라. 전화로 기자라는 것을 증명할 수도 없고 황당했다.

비상구=서울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기자실 문화가 엄격하다. 기자실에서 선배에게 인사했는데 시끄럽다고 혼났다.

왕돈까스=나도 기자실에서 커피 한 잔 마셨다가 엄청 혼났다. 선배가 ‘기자실이 네가 생각하는 만큼 편한 곳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훈계하더라.

주먹밥=지역은 신입이 들어오면 다른 언론사에 소문이 퍼진다. 출입처 기자들이 이미 내 신상을 다 파악하고 있다. 정작 사수 선배는 모르는 정보도 다 알고 있다. 그런 관심이 조금 부담스럽다.

꽃가루=나는 그들을 모르지만 그들은 나를 알고 있다.

주먹밥=지역은 출입처 사람끼리 돈독하게 잘 지낸다. 그래서인지 선배가 출입처의 타사 선배한테도 정말 잘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당당하면서도 깍듯하게 행동해야 한다.

모닝사과=타지 생활도 힘든 점 중의 하나다. 나는 연고도 없는 타지에서 수습 생활을 하고 있는데 힘든 일이 있어도 술 한 잔 기울일 친구가 없을 때 정말 외롭다. 절대 외로움 타는 성격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군대에서조차 울어본 적이 없는데 며칠 전 아침밥으로 먹을 사과를 씻으면서 처음으로 울었다.

사회=지역은 취재여건도 열악하다고 들었다.
모닝사과=취재인력이 너무 부족하다. 그런데 충원을 하지 않는다. 내 위의 선배가 2년 동안 막내 기자였다. 우린 그나마 낫다. 어떤 곳은 수습 바로 위 선배가 10년차라고 하더라.

주먹밥=난 5년 만에 뽑혔다. 내 사수 선배는 10년 만에 뽑혔다고 했다. 인력이 적으니 기획기사보다는 당일치기 식으로 기사를 처리한다. 수습 때까지야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지만 연차가 쌓인 후에는 암담할 것 같다.

왕돈까스=인력이 부족하니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하다. 자연스럽게 개인별 업무 강도가 세질 수밖에 없다. 휴일에 일하는 것은 물론이고 퇴근을 해도 잔업에 시달린다.

모닝사과=선배가 휴가를 가면 선배 출입처까지 모두 내가 맡아야 한다. 업무량이 2배가 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인력이 별로 없으니 당직도 빨리 돌아온다. 주말이 딱히 없다. 하루에 12시간 넘게 일하는데 시급으로 환산하면 도대체 얼마일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비상구=아무래도 돈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 같다. 회사는 일당백을 원하고 업무 강도는 센데 받는 돈은 너무 적다. 그나마 우리 회사는 나은 편이지만 재정 상태가 좋지 않아 월급을 못 주는 지역 언론사도 있다고 하더라.

왕돈까스=도저히 돈을 모을 수가 없다. 결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주먹밥=취재차량도 지원이 안 된다. 지역은 대중교통이 좋지 않아 차를 몰고 다녀야 하는데 취재차량이 없으니 차를 사야 한다. 대출을 받아 중고차라도 살 수밖에 없다.

왕돈까스=주유비도 따로 준다고 하는데 명목상일 뿐이다. 영수증을 들고 가면 실비 처리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월급 안에 포함돼 있다. 사실상 기본급 개념이다.

사회=지역 언론의 위기라는 말이 많다. 지역 주민들이 지역 언론을 어떻게 바라보나?
비상구=예전에는 나는 새도 떨어트릴 정도라고 했는데 위상이 옛날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왕돈까스=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기자가 ‘기레기’로 불려서 위세가 떨어졌다기보다 요즘 사람들이 신문 자체를 잘 안 본다. 사실상 구독부수로는 수익을 창출하기 어려워진 것 같다. 그래서 지방지는 기자들도 영업을 뛴다.

사회=지역 언론사 간 경쟁도 치열하다는데 체감하나?
꽃가루=지역 언론사 간 경쟁이 심한 것 같지는 않다. 빈익빈 부익부가 커서 오히려 경쟁이 아예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비상구=경제부와 사회부는 치열한 것 같다. 내가 봤을 때 경쟁보다는 자존심 싸움이 있다. 지역에도 수많은 언론사가 있고 나름의 급이 있다. 출입처도 들어오지 않고 받아쓰기만 하는 지역 언론사들이 있는데 그런 언론사 기자와 말을 섞으면 선배가 굉장히 혼낸다.

왕돈까스=그 자존심이 체육대회에서도 드러난다. 지역은 정말 목숨을 걸고 체육대회에 참여한다. ‘축구 마와리’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축구대회를 목전에 두면 2주 전부터 아침에 2시간씩 훈련을 한다.

비상구=분위기가 전쟁 수준이다. 군대에서 이등병이 무조건 뛰는 것처럼 수습기자도 모든 종목에 참가한다. 정말 염통이 터져라 뛰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배한테 깨질 가능성이 높다.

사회=수습기자로 생활하면서 그만두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닐 것 같다. 지역 기자 생활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비상구=지역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경우 지역 언론사에 적응하기가 힘들다. 내 동기도 그 때문에 힘들어하다 그만뒀다. 그 친구 말로는 똑같이 힘들다면 서울권의 이름 있는 언론사에서 힘든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하더라.

모닝사과=난 그 생각에 공감한다. 어차피 똑같이 힘들다면 타지 중에서도 서울이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왕돈까스=나는 다행히 이곳에 연고가 있다. 나고 자란 지역에서 기자를 하는 것은 나름의 장점이 있다. 동향 사람이라 취재원이 친근하게 대해주고 동문들도 쉽게 만난다. 처음에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3~4개월 수습기자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나아지더라. 안정권에 들어서는 느낌이다.

비상구=지역 언론사가 열악하기는 해도 고향이라 그런지 선배들 중에 서울로 옮기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나도 이곳에서 기자를 계속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꽃가루=나는 앞날이 캄캄하다. 통신사 기자라서 그런지 미래에 로봇기자가 내 자리를 대체하는 것은 아닐지 불안하다. 통신사 수습교육도 로봇 업그레이드로 대체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주먹밥=아직 수습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미래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다. 다만 사무실에 울려 퍼지는 선배의 한숨소리가 꼭 나 때문인 것 같아 찔리고 마음이 아플 뿐이다. 열악한 환경의 지역 언론사인 만큼 선배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더욱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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