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대선 캠프 출신이자 대통령직인수위에까지 몸을 담았던 인사가 위원장으로 내려 올 때부터 지금의 어처구니없는 사태는 예견되었는지 모른다.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소위가 KBS의 ‘문창극 보도’에 대해서 ‘관계자 징계’라는 강도 높은 법정제재를 결정해 양식을 가진 대다수는 할 말을 잃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4일 예정된 전체회의에서 이 같은 중징계가 일사천리로 확정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로써 방심위는 청와대와 여당의 2중대요,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는 가시 돋친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정녕 방심위는 민간 기구라는 허울을 쓰고서 정권의 편에서 사실상 사후 검열의 칼을 휘둘러 ‘열린 사회의 적’이 되려고 하는가.
지금의 방심위가 이견이 있는 사안을 다룸에 있어서는 다른 무엇보다 합의를 존중해야 할 독립적 위원회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이번 중징계 결정이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스스로의 양심과 소신에 따른 결정이었는지 방심위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묻고 싶다. 방심위 소위에 참여한 5인 가운데 야권 추천 위원 2명은 ‘문제 없음’ 의견을 낸 반면 여권 추천위원 3명이 중징계 의견을 밀어붙였다고 한다. 합의정신을 무시한 채 운영되어온 방심위 행태를 참다 못해 지금 위헌성을 지적하는 격앙된 목소리가 시민사회와 언론학계에서 터져 나오고 심지어 방심위 해체 요구까지 잇따르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은 현 사태의 심각성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그간에도 방심위는 정권에 유리한 사안에는 솜방망이 처분을 내린 반면 정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보도에는 중징계를 남발해 왔다. 더구나 그 같은 중징계가 법원의 판결로 잇따라 뒤집어지는 망신을 당하고도 방심위는 이번 KBS 문창극 보도에 대해 또 다시 무리수를 두었고 스스로 ‘편파심의’ ‘표적심의’ ‘코드 심의’의 정권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KBS의 문창극 보도가 한국기자협회의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고 방송기자연합회와 방송학회가 공동으로 시상하는 방송기자상을 받는가 하면, 간부급 기자들과 은퇴한 원로기자들로 구성된 방송기자클럽의 보도상까지 연달아 수상한 사실은 굳이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KBS의 문창극 보도는 언론 종사자들의 높은 지지와 호평을 받은 근래 보기 드문 수작이었다는 데 이견이 없다.
기자상을 심사한 언론사 중견기자들과 교수들은 “총리 후보자의 역사관과 도덕성을 검증하는 보도였고, 취재과정에서 언론의 기본정신을 지켰다”고 밝히고 있다. 이 같은 모범적 보도에 대한 난데없는 방심위 중징계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한국 언론 종사자들이 그간 공유해온 뉴스 판단 기준 그리고 언론의 사명에 대한 기자사회의 윤리적 합의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비이성적 처사라고 아니할 수 없다.
법원의 잇따른 제동에도, 시민사회 등의 우려에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방심위의 눈은 도대체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 건가. 어렵게 한 걸음씩 전진했던 한국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의 역사에 커다란 오점으로 남을 참담한 사태 앞에 기자사회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정파 논리에서 벗어난 전문성과 경륜을 보여주기 보다는 청와대와 여당 거수기의 길을 걷고 있는 방심위의 볼썽사나운 행적들을 우리 기자들은 잊지 않고 낱낱이 기록해 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