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누명 '수지 김 사건' 보도 뒷 이야기
95년 취재시작 6년만에 기사화
서정은 기자 | 입력
2001.11.17 11:13:30
이정훈 기자 전 직장 시사주간지 보도 외면
87년 1월 세간을 떠들석하게 했던 ‘수지김 사건’(사진)은 당시 안기부 발표에 의해 ‘여간첩 한국인 납치미수 사건’으로 결론이 났다. 당시 언론은 같은해 1월 14일 발생한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보도에 정신이 없었고 결국 수지김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95년. 당시 주간조선 기자였던 이정훈 기자는 싱가포르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김씨의 남편인 윤씨를 조사했던 외무부 직원들이 당시 윤씨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았다는 말을 우연히 듣고 이 사건의 자초지종을 풀어가기 시작했다.
이 기자는 본적지만을 갖고 수소문 끝에 충북에 살고 있던 김씨의 가족을 만날 수 있었지만 윤씨는 끝내 찾지 못했다. 당시 기억을 떠올리던 이 기자는 “김씨 집안에 넥타이를 맨 사람만 있었어도 이렇게는 안당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당시 윤씨를 조사했던 안기부와 외무부 직원들의 설명이 엇갈리는 등 취재 결과 김씨가 간첩이란 증거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안기부가 공안정국을 조성하기 위해 김씨를 희생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게 됐다. 김씨가 간첩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에 알려야 했다.”
그러나 이 기자의 보도가 기사화되기까지는 6년의 세월이 걸렸다. 이 기자가 몸담았던 주간조선과 시사저널은 이 기사를 싣지 않았던 것. 이 기자는 “데스크들이 이 사건을 잘 알지 못했고 또 소송 걸리기에 딱 좋은 기사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2000년 1월 당시 주간동아 편집장이었던 송영언 동아일보 논설위원이 이 기사를 싣기로 결정하면서 13년만에 수지김 사건의 감춰졌던 진실이 언론에 의해 알려졌다. 그러나 많은 언론들은 이 사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주간동아의 보도를 보고 유일하게 취재에 나선 곳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남상문 PD 뿐이었다.
“간첩 사건에 의혹이 있다면 과연 누가 김씨를 죽였는지 궁금했다”는 남 PD는 이 기자를 만나 자료를 건네 받고 홍콩 경찰과 윤씨를 직접 취재했다. 홍콩 경찰이 윤씨를 범인으로 지목한 결정적인 인터뷰도 따냈지만 끝내 이 부분은 방송되지 못했다. 당시 벤처기업 대표였던 윤씨가 방송금지가처분을 신청했고 법원이 “윤씨를 유력한 살인용의자로 지목한 부분은 인격권이 침해될 수 있다”며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결국 두 언론의 추적보도는김씨의 가족들에게 큰 용기를 줬다. 김씨가 간첩이 아니라는 확신을 얻게 된 가족들은 억울한 누명을 벗기기 위해 나섰고 결국 검찰은 윤씨를 살인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영원히 묻혀질뻔 했던 사건이 14년만에 햇빛을 보게 된 데에는 이처럼 두 언론의 끈질긴 추적·탐사보도가 자리잡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