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자협회를 비롯한 언론 5단체가 공동으로 마련한 재난보도준칙이 마침내 윤곽을 드러냈다. 지난 4월 제정에 착수했으니 꼬박 5개월 만이다.
16일 선포식과 함께 공개된 재난보도준칙은 두 번 다시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적인 사고가 반복되지 않는 나라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겠다는 대한민국 언론의 다짐이다. 대낮에 배가 기울어가는데도 한 명도 살려내지 못한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막아내지 못한 언론의 죄책감과 무력감이 녹아 있는 반성문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실이 한꺼번에 터진 4월16일은 대한민국 언론사에도 수치스런 날이다. 수많은 매체와 기자들이 진도 팽목항으로 몰려들었지만 우리가 전한 소식은 언론계가 오랜 세월 답습해온 관행적 재난보도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속보경쟁에 매몰돼 정부당국의 설익은 발표를 받아쓰기에 바빴다. 특히, 사고 발생 초기 ‘전원구조’ 오보는 두고두고 뼈아픈 기억이다. 상황의 심각성을 오판하게 만든 결정적 단초를 제공한 탓이다.
사건 현장과 동떨어진 보도 내용은 비탄에 빠진 실종자 가족들의 가슴을 또 한 번 멍들게 했다. 밤잠을 설치며 현장을 지킨 기자들의 목소리는 보고 체계를 거치며 가공되는 과정에서 점점 더 현장 분위기와 멀어졌다. 혈육을 잃은 가족들의 울부짖음을 검증이 필요한 ‘위험한’ 주장으로 간주하며 차가운 모습을 보이던 언론이 재난당국의 발표 앞에선 ‘공신력’이라는 이름으로 별다른 검증도 없이 확대 포장을 일삼았다.
유가족들은 너무나 어이없는 사고로 자녀들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속 시원한 진상 규명은커녕 실태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언론을 보며 언론의 존재 이유를 물었다. 무엇이 진실이며 무엇이 공익인지를 묻고 또 물었다.
의문은 지금도 풀리지 않고 있다. 기레기 논란, 청와대 앞 행진, KBS 사장 퇴진, 촛불 집회, 단식 농성을 거쳤지만 남은 건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정쟁과 여론 분열이다. 언론의 역할이 다시금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준칙은 재난보도의 현실과 문제점을 열거하며 언론의 각성을 촉구함과 동시에 언론의 속성과 구조적 한계도 최대한 반영하려 애썼다. 위기회피용 보여주기 방식의 준칙 제정이 아니라 실제 운용 과정에서 보다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선 언론인들의 동의와 참여가 최우선이라는 판단에서다. 수차례 언론계 안팎의 전문가 자문과 공청회를 거쳐 언론의 현실과 당위 사이 간극을 좁히려 시도했다. 정부 및 재난관리당국에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공개를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언론매체 간의 재난현장 취재협의체 운용은 사실상 이번 준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자극적인 보도 대신 신중한 보도를 통해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특정 매체의 노력만으로는 어렵기 때문이다. 현장과 데스크간의 원활한 의사소통 못지 않게 재난취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언론사간 유기적 협조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번에야말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수많은 언론단체들이 머리를 맞댄 결과 재난보도준칙이 탄생했다. 뜻을 같이 한 단체만 무려 15개다. 일선 기자부터 간부, 편집인, 경영진을 망라할 뿐 아니라 업종, 직종별로도 신문, 방송, 인터넷, 어문, 사진, 카메라 등 다양한 언론인들이 동참했다는 점에서 변화의 희망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