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 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나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 지금 이 순간 얼마만큼의 자유가 있는가? 이 같은 우문(愚問)에 평생 이 땅에 완전한 자유가 실현되기를 온 몸으로 노래했던 시인 김수영은 대답한다. 자유에 관한 한 “‘이만하면’ 자유롭다”는 말은 언어도단이요 자가당착이라고. 자유는 말하자면 절대 개념이라서 그 어떠한 중간사(中間辭)로도 한정될 수 없다는 것이 시인의 예민한 정신이 파악한 자유의 진면목이다. 다시 묻는다. 지금 우리는 ‘이만하면’ 자유롭게 할 말을 하고 사는 것이 맞는가? 여기에 “그렇다”고 무심코 답하는 순간 우리는 도처에서 ‘표현의 자유’가 제한받고 있는 이 기막힌 역사의 퇴행을 못 본 척 눈 감고 수수방관하거나 최소한 방조하는 잘못에 가담하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는 오직 자유로울 수 있을 뿐 ‘적당히’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에서 ‘표현의 자유’가 지속적으로 위축되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지켜보노라면 종전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매우 불길한 조짐을 읽을 수 있다. 과거에는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련의 조치들이 음험한 장막 뒤에서 은밀하게 이뤄졌다면 지금은 오히려 보란 듯이 공공연하다는 점이다. 마치 공복들이 자신들의 주인인 국민 전체를 상대로 “당신도 말조심하는 것이 신상에 좋을 거야”라며 엄포를 놓는 듯한 안하무인이다. 


이제 건전한 양식을 지닌 시민들의 마음 한 구석에까지 밑도 끝도 없는 까닭 모를 불안감이 무겁게 짓누르게 되고야 만 사태의 당연한 귀결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는 대통령 스스로의 노기 서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검찰이 사이버 명예훼손과 허위 사실 유포 등에 대해 인터넷 실시간 감시 방침을 밝힌 데 따른 역풍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을 기세다. 벌써 독일에 서버를 둔 사회관계망 서비스 ‘텔레그램’으로 옮긴 대한민국의 사이버 망명객이 25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고 한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대통령을 풍자한 중견 화가의 그림이 전시장에 걸리지 못한 일이 기억에 생생한데 최근에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의 상영여부를 두고 진통이 있었던 것도 지금 이 나라에 감도는 억압적 공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 교사 46명은 세월호 구조 실패에 대해서 정권의 책임을 요구한 시국 선언을 청와대 게시판에 올렸다가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되었다고 한다. 사후 검열기구 노릇을 하면서 언론의 정권 비판 보도에 재갈을 물리고 취재와 보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의 일탈도 빼놓을 수 없다. 수상하기만 한 시절, 이번에는 한 방송사 코미디 프로그램이 인터넷 상에서 갑작스럽게 사라진 일을 두고 다들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소재로 삼았다 괘씸죄에 걸린 탓 아니냐고 말들이 무성하다. 


자본주의 체제를 살아 숨 쉬게 하는 피(血)를 바로 화폐라고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체제로서 자유주의의 피(血)는 다름 아닌 ‘표현의 자유’라고 할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하는 곳에 창조는 있을 수 없고 더더욱 이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 마지않는 ‘창조 경제’도 난망한 일이다. 시민들의 선량한 비판에 재갈을 물리는 정권은 경고음을 무시한 채 벼랑 끝으로 폭주하는 기관차의 운명을 피하기 어렵다. 


민주 사회의 상식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련의 반헌법적 사태를 목도하면서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이 나라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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