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이 이뤄지면 경제가 살까?

[스페셜리스트 | 경제]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경제학박사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개헌을 둘러싼 내홍으로 시끄럽다. 경제담당 기자로서 정치적 이슈와는 거리가 있지만, 이번 개헌 논의는 경제계에서 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바로 개헌론자들이 말하는 개헌의 필요성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우리사회가 철저한 진영논리에 빠져서 지금 아무 것도 되는 것이 없다. ‘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 게임이기 때문에 권력 쟁취전이 발생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식으로 (대통령이 외교와 국방을, 총리가 내정을 맡는) 이원집정부제로 권력을 분점해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치 선진국들은 모두 연립정부 형태를 취한다”고 덧붙였다.


우리사회가 이념·빈부·세대·지역·노사 갈등 속에서 진영논리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데 대다수 국민들이 공감한다. 또 연정을 통해 사회통합을 도모하는 선진국 중 상당수는 (미국을 제외하면) 내각제를 운영하는 것이 현실이다. 


후진적 정치사회에서 선진 경제가 이뤄질 수 없다. 결국 경제발전을 위해서도 사회통합을 이루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단적인 예로 노사정 대타협이 실패할 경우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까?


독일 기민당의 메르켈 총리는 지난해 총선에서 승리한 뒤 사민당과 대연정을 이뤘다. 메르켈이 올해 발표한 최저임금제 방안은 연정의 합작품이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집권한 아데나워 초대총리 이래 좌우 대연정이 거의 관행화되어 있다. 국민들은 좀처럼 특정 정당에게 과반수 의석을 허용하지 않고, 정치권은 국민 대다수를 포용하기 위해 대연정을 시도한다. 이는 독일이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우리도 사회통합에 도움이 된다면 개헌보다 더 한 일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론은 경제를 삼키는 블랙홀이 될 것”이라며 마냥 반대만 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관건은 내각제 요소의 도입으로 권력분점이 이뤄지면 타협과 상생의 정치가 저절로 이뤄져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느냐다. 인간은 의사결정의 주체이지만, 다양한 사회제도에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유사한 제도 아래서도 결과가 달라지기 일쑤인 것을 보면 인간의 행태가 제도만으로 결정된다고 단정하는 것도 위험하다. 제도를 선택하는 것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안정과 통합에 도움이 되는 제도의 도입을 위해 노력하면서 그 과정에서 타협과 상생을 위한 조건을 만들고, 그것들이 축적돼 사회의 관행과 규범으로 자리잡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역시 독일의 경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대연정이 가능했던 것은 전후 일찌감치 ‘국민 전체가 먹을 수 있도록 경제 전체의 파이를 최대한 키우되, 이를 공정하게 분배해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독일은 이를 기반으로 사회적 타협과 노사공동결정제 같은 노사협력을 이루었다. 이는 독일이 현 경제위기 속에서도 경제강국으로 버티는 힘이 됐다. 


우리도 개헌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단순한 제도 도입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우리사회가 타협과 상생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큰 원칙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병행돼야 한다. 그런 것들이 빠진 개헌 논의는 또 다른 권력 다툼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설령 개헌이 이뤄져도 여야가 각기 반쪼가리 권력을 붙잡고 극한대립을 벌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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