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는 방송 면허를 반납하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걸을 수 있는 한 자유언론에 바치겠다.”
지난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 40주년을 맞아 백발이 성성한 원로언론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1974년 10월24일 동아일보의 기자와 동아방송의 PD, 아나운서가 당시 박정희 정권의 언론 탄압에 맞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한 지 어느덧 마흔 해가 된 것이다. ‘자유언론’을 위해 기꺼이 ‘거리의 기자’가 됐던 이들 중엔 말 그대로 걷는 것조차 어려운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강산이 네 번이나 변할 긴 시간이 지났어도 ‘자유언론은 어떠한 구실로도 억압될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는 ‘자유언론실천선언’의 정신은 원로언론인들의 눈빛 속에 그대로 살아 있었다.


바로 그날 대한민국의 대표적 공영방송 중 하나인 MBC가 교양제작국 해체를 골자로 한 조직개편안을 확정했다. 교양국은 ‘아마존의 눈물’ 등 고품격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한국방송의 수준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해온 곳이다. MBC 경영진은 ‘PD수첩’ ‘불만제로’ ‘W’ 등 MBC의 대표 프로그램을 만들어온 시사교양국을 시사제작국과 교양제작국으로 쪼갠 데 이어 PD들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남아 있던 교양제작국을 없애 버리기로 한 것이다. 이는 기자 저널리즘과 함께 한국사회 저널리즘의 한축을 담당했던 PD저널리즘을 책임져온 교양PD를 말살하겠다는 정책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특히 교양국 해체의 이유로 MBC 경영진이 제시한 것이 ‘수익성 강화’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교양 프로그램 없이 돈벌이가 쉬운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만 방송하면 공영방송, 아니 지상파 방송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정 그것을 원한다면 MBC는 지상파 방송 면허를 반납하고, 케이블 오락채널을 만들면 될 것이다.


MBC 경영진의 조직개편안을 살펴보면 경악할만한 사실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사업부’나 ‘마케팅부’라는 이름의 부서가 방송 제작 부문 곳곳에 생겼는데 심지어 ‘뉴스 사업부’까지 신설됐다. ‘뉴스 사업부’라니, 뉴스를 돈벌이에 이용하겠다고 대놓고 나선 것이 아닌가. 아직 구체적인 업무내용이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사업 PD’나 ‘사업 기자’를 배치해 정부나 기업에 ‘협찬 유치’ 같은 수익사업을 시키겠다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


MBC는 이미 수도권에 기자, PD, 아나운서를 대거 투입해 지방자치단체와 그 유관단체로부터 거액의 협찬금을 유치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작년에 법원으로부터 불법이라는 판결을 받았음에도 최근 또다시 이 ‘사업’을 확대했다고 한다. 경영진의 부당한 간섭으로 불공정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건 방송법이 강력히 금지하는 불법행위로 방송 광고 금지나 방송사 허가 취소 같은 최악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우리가 MBC의 조직개편안에 분노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공영방송이 상업방송에 모범을 보이기는커녕 최소한의 상식과 법조차 무시하는 일들을 너무나 버젓이 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선 이 같은 조치가 비판적인 PD들의 소속을 없애고, 비판적인 기자들을 뉴스 밖으로 내보냄으로써 정권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려는 경영진의 술책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무리수를 둘수록 정권에 신임을 받는 경영진들의 충성경쟁 산물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우리 언론 환경이 40년 전으로 후퇴했다는 얘기다. 참으로 암담하지만 한탄만 하고 있을 순 없다. 기자, PD, 아나운서가 똘똘 뭉쳐 40년을 버텨온 선배들처럼 우리도 ‘자유언론실천선언’ 정신으로 다시 돌아가 하나가 되자. 저널리즘의 기본을 지켜내는 데 기자와 PD가 따로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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