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생'으로 채널 돌리는 시청자·광고주

지상파 위기 '출구가 안보인다' (2)콘텐츠의 위기

종편·케이블 지상파 텃밭 잠식
중국 프로그램 위협도 초읽기


지상파 드라마가 유례없는 흉작을 기록한 한 해였다. 올해 시작한 지상파 3사 미니시리즈 가운데 시청률 20%를 넘긴 드라마는 단 한 작품도 없다. 한때 20%는 넘겨야 성공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3사 미니시리즈 시청률을 합해야 겨우 20%를 넘는 수준이다.


비단 올해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방송된 드라마 시청률 10위권 내에 미니시리즈는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9위)와 KBS ‘굿닥터’(10위) 단 두 편뿐이었다(닐슨코리아 집계). 중장년층이 즐겨보는 연속극이 아닌 이상 시청률 30%를 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됐다.


주목할 것은 드라마 편당 시청률이 아니라 지상파 미니시리즈 시청률의 총합 자체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 시청자들은 지상파 콘텐츠를 ‘본방사수’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지상파에 볼만한 프로그램이 없으면 종편이나 케이블로 채널을 돌리고, 그마저도 아니다 싶으면 SNS나 게임에 빠진다. 


통계를 보자. 2013년 1월 지상파 3사(4개 채널)의 합산 시청률은 24.8%, 시청점유율은 54.0%였다. 그런데 2014년 8월 지상파 시청률은 21.2%로, 점유율은 절반을 겨우 넘긴 51.0%로 뚝 떨어졌다. 반면 종편 4사와 일반 PP 합산 시청 점유율은 같은 기간 36.7%에서 42.7%까지 크게 올랐다. 시청자들이 지상파를 떠나 종편과 케이블로 옮겨 가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 올해 종편과 케이블의 약진은 두드러졌다. 한때 ‘저질 상업방송’, ‘지상파의 변방’으로 불리던 케이블은 지상파에 전혀 뒤지지 않는 콘텐츠 경쟁력으로 동시간대 방송되는 지상파 프로그램을 위협하기도 한다. tvN의 귀농 프로젝트 ‘삼시세끼’는 지난 10월 4.3% 시청률로 시작, 매회 상승 곡선을 타서 지난 5일 방송에선 8.2%를 기록했다. 올 하반기 최대 화제작 중 하나인 tvN 드라마 ‘미생’은 7%대 시청률로 순항 중이다. JTBC도 예능부문에서 ‘히든싱어’, ‘마녀사냥’, ‘비정상회담’ 같은 히트작을 꾸준히 내는 한편 드라마에서도 ‘밀회’, ‘유나의 거리’ 같은 작품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시청자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포털사이트 다음이 집계한 2014 올해의 검색어 방송 분야 10위권 안에는 ‘미생’과 ‘비정상회담’이 쟁쟁한 지상파 프로그램들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지상파는 여전히 국내 방송 콘텐츠 시장 점유율 80%를 차지하는 ‘공룡’이지만 그 위세는 예전만 못하다. 특히 지상파TV 실시간 시청자층의 노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20~40대를 타깃으로 하는 광고주들의 이탈도 심각한 수준이다. 이미 지난 3년여 간 지상파 광고는 3000억원 넘게 줄었다. 곽혁 한국광고주협회 상무는 한때 “MBC ‘뉴스데스크’에 광고를 하려고 광고주들이 안달하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뉴스데스크’ 광고가 보너스로 나간다. 광고주들은 그것마저도 싫다고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상파 1개 채널에서 광고가 ‘완판’되는 프로그램은 1주일에 두세 편 정도다. tvN 드라마 ‘미생’은 광고가 매회 완판이다.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선 우수한 인력과 안정적인 재원이 필수다. 그런데 지상파는 광고 매출 감소→제작비 삭감→인력 외부 유출→콘텐츠 경쟁력 하락이라는 악순환 속에 놓여 있다. ‘응답하라 1994’, ‘삼시세끼’, ‘미생’, ‘히든싱어’ 등 종편과 케이블의 인기 프로그램 연출자가 대부분 지상파 출신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새로운 시도나 실험 대신 기존의 성공 모델을 반복, 답습하는 사이 이들 종편과 케이블 채널은 타깃 시청자를 세밀히 분석하는 등 철저히 비즈니스적 관점으로 접근해 지상파의 경쟁력과 점유율을 잠식했다. 이제는 외주제작사나 대형 연예기획사들조차도 프로그램 기획부터 플랫폼을 통한 유통과 배급까지 고민하는 단계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중국의 무서운 성장세다. 지금은 국내 지상파 방송사들이 ‘아빠 어디가’, ‘런닝맨’ 등의 인기 프로그램 포맷을 판매하며 한껏 고무돼 있지만, 2년 안에 중국 콘텐츠가 세계를 장악하게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우리의 가장 큰 콘텐츠 수출 시장 중 하나였던 중국이 직접 스타 작가와 배우들을 유치해 현지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시작하면 국내 지상파 방송사들이 대항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때문에 이제라도 지상파 방송사들이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 맞는 플랫폼 및 콘텐츠 정책을 세우는 등 변화를 위한 체질 개선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디어 전문가들은 미국 동영상 업체 넷플릭스 사례를 들곤 한다. 넷플릭스는 30억 시간이 넘는 빅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하우스 오브 카드’라는 드라마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면서 HBO를 위협하는 무서운 방송사로 떠올랐다. SM 컬처 앤 콘테츠 한지수 본부장은 “볼거리는 넘쳐나고 트렌드를 읽고 따라가기는 힘들다. 즉흥적인 기획으론 안 된다. 기업 R&D처럼 콘텐츠 연구개발을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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