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 그리고 집

[스페셜리스트 | 문화] 심연희 KBS 기자

한때 우리에게 내 집은 ‘성공’과 ‘노후 대비’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내 집을 마련해 집들이를 한다는 것은 ‘잔치’였다. 하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어느새 집을 소유한다는 것은 ‘빚쟁이’와 같은 말이 됐고, 최근엔 집을 그저 잠시 거주하는 곳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아졌다. 


한때 투자와 투기를 연상시켰던 ‘집’이란 단어는 이제 ‘스위트 홈’과 더 가깝다. 집을 사기도 어렵고, 집값 상승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2030세대는 그래서 ‘현재의 필요’와 ‘삶의 질’에 주목한다. 머나먼 내 집 마련의 꿈을 꾸다가 좌절하기보다는 당장 가까이 있는 ‘작은 사치’로 자신을 위로한다. 자연히 비록 셋집일지라도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나만의 집’을 꾸미고 싶어한다. 


최근 스웨덴에서 온 가구 회사 ‘이케아’가 국내에 문을 열었다. 이케아는 현재 40여 개국에 340여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해 매출은 약 40조원이 넘는다. 개장 훨씬 전부터 각종 논란이 일었지만 보란 듯 첫날부터 인산인해, 일주일도 안 돼 10만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열풍이다. 


잘 알려졌듯이 이케아는 화려한 장식보다는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디자인과 실용성을 강조한 스칸디나비아 가구다. 가격도 현실적이다. 이케아 가구는 한 번 장만하면 평생 사용하고, 대를 이어 물려주기까지 하는 소중한 자산은 아니다. 유행에 따라, 취향의 변화에 따라 선택했다가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소모품이다. 집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 생활 방식의 변화를 이케아를 통해 현실화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이케아를 필두로 이른바 ‘홈퍼니싱’을 표방하는 글로벌 기업들도 잇따라 국내에 선보이고 있다. 홈(home·집)과 퍼니싱(furnishing·단장하는)의 합성어인 홈퍼니싱은 가구는 물론 침구와 인테리어 소품, 커튼, 벽지, 주방용품 등으로 집 안을 꾸미는 것을 말한다. 옷이나 가방 등으로 치장하듯 집도 입맛에 맞게 가꾸는 활동이다. 이런 제품을 파는 매장을 ‘라이프 스타일숍’이라 부르기도 한다. 현재 국내 홈퍼니싱 시장 규모는 약 12조5000억원으로 추산되며, 국내외 기업들이 계속 진출하면서 시장 규모는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 시장의 무한한 가능성을 본 이케아는 2020년까지 매장 5곳을 더 열겠다는 계획이다. 


이케아 가구 자체가 한국 시장에서 얼마나 대박을 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케아의 출현이 국내 가구산업의 지각 변동은 물론, 집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란 점이다. 가구나 생활 소품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우리의 생각과 문화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자산으로서의 집, ‘드림 하우스’에 매몰돼 왔던 사람들은 이제 이케아 같은 ‘라이프스타일숍’을 이용해 ‘리얼 홈’을 만들고, 현재의 행복을 추구할 것이다. 한겨울에 닥친 이케아 열풍은 그래서 더욱 강력하고, 오래 지속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 변화의 바람, ‘순풍’에 올라탔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국내 가구업계는 그동안 ‘공룡’의 등장을 막는 데만 더 힘을 쏟았던 듯 하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는 말이 유행했듯이 가구는 그저 물건이 아니다. 단지 싸게, 튼튼하게 만든다고 팔리는 시대는 지났다. 국내 가구업계가 사회의 변화를 제대로 읽고 대비했더라면 뜨거운 바람을 내뿜는 공룡 앞에서 지금처럼 추위를 느끼진 않았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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