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길은 결국 진실 보도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교수들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부른다’는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했다고 한다. 진나라 때 환관 조고가 황제에게 사슴을 말이라고 바치자 말이 아니라 사슴이라고 지적했던 신하들을 죽여 버렸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는 지록위마.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들어 강압으로 인정하게 한다는 뜻이다. 교수들은 사슴을 말이라고 대놓고 속였던 2200년 전 중국의 상황이 2014년 대한민국에서 재현됐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12월 한파가 절정이던 지난 19일, 헌법재판소가 한 정당의 해산을 결정했다. 소속 국회의원 5명의 의원직은 박탈됐고, 그 정당에 투표한 200만명 유권자의 민의는 무시됐다. 언론의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민주주의 정신이 침해됐다”와 “자유민주주의가 지켜졌다.” 침해된 민주주의와 지켜진 민주주의, 어느 쪽 언론이 얘기하는 민주주의가 진짜인 것일까. 어느 언론이 사슴을 말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의례적 표현으로 넘기기엔 너무도 엄청난 일들이 계속됐던 한 해가 끝나간다. 우리 언론은 관찰자이자 감사자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올해에는 중요한 책임을 져야할 때가 유난히 많았다.


재난보도 사상 최악의 오보로 꼽히는 ‘세월호 승객 전원구조’ 오보와 피해자 폄훼보도라는 어이없는 보도행태까지 등장한 세월호 참사 보도는 ‘기레기’ 논란과 함께 언론의 존재 이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정부와 언론이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는 대신 본질을 흐리는 데 주력하면서 인명피해가 왜 이렇게 커졌는지 아직까지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 지원대책도 결국 해를 넘기게 됐다. 세월호 참사 보도를 계기로 KBS에선 제작거부 사태와 사장 퇴진으로까지 이어졌다. 또 다른 공영방송 MBC에선 오히려 저널리즘의 퇴행이 더욱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이른바 ‘김재철 키드’로 불리우는 인사들이 국민의 안전보다 권력의 안위를 염려하면서 사슴을 말로 만들었다.


민경욱 KBS 앵커 등 언론인들의 잇따른 청와대행은 가뜩이나 부정적인 기자에 대한 이미지를 더욱 나쁘게 했다. 편향보도와 권력지향의 기자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정윤회씨 등 대통령 측근들이 국정을 농단한다’는 세계일보의 특종보도는 모처럼 언론이 제 역할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라를 망가뜨리는 실세들의 권력남용에 대한 청와대 내부 보고서는 대통령과 검찰에 의해 엉뚱하게 보고서 유출사건이 돼 버렸다. 결국 보고서 작성자와 보도한 기자에 대한 수사로만 이어졌고, 국정농단의 실체는 흐지부지돼 버렸다.


한 해 동안 수많은 사슴이 말로 둔갑했다. 우리 언론은 때로는 두려움에, 때로는 탐욕에 사로잡혀 사슴을 말로 부르는 데 앞장섰다. 사슴을 사슴이라 말하다 쫓겨난 기자들 대부분은 여전히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나름대로 목소리를 냈던 뉴스타파와 JTBC가 호평을 받은 것은 언론의 살 길은 진실보도뿐이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해 줬다. 온라인이든 앱이든, 디지털이든 아날로그이든, 미디어 전략의 핵심은 신뢰의 회복이다. 사슴을 말이라 주장하는 언론에 누가 지갑을 열겠는가.


사슴이 말로 바뀌었던 우울했던 말의 해가 저물고 양의 해가 오고 있다. 내년에는 모든 언론이 양은 양이라고 당당히 부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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