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새로 부임한 이건태 주(駐)이스라엘 대사가 최근 신임장을 받기 위해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을 찾았다. 이 대사는 그 자리에서 “언제 한번 한국도 방문해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의례적 인사말이었다. 이말을 들은 리블린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내 전임인 시몬 페레스 대통령이 2010년 한국을 방문했다. 네타냐후 총리 역시 1기 임기 때 방한했다. 한국은 어떤가? 내가 어떻게 또 한국을 갈 수 있겠나?”
의전(儀典)을 중요시하는 외교 관례상 한국 대통령의 답방(答訪)이 없었는데 본인이 또다시 한국에 갈 수는 없다는 의미였다. 한국의 장관급 인사가 이스라엘을 방문한 것은 7년 전인 2007년 노무현 정부 송민순 외교부 장관이 마지막이었다. 우리나라가 1962년 이스라엘과 수교를 맺은 이래 역대 정상 중 이스라엘을 방문한 대통령은 지금까지 한 명도 없다.
같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사이에서 수교를 맺은 뒤 정상 방문이 한 차례도 없던 나라는 외교가에서도 이례적으로 간주된다. 역대 이스라엘을 방문한 우리나라 최고위 인사는 1999년 당시 김종필 총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중·일·러 주변 4강부터 아세안(ASEAN), 유럽연합(EU),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차례대로 신경쓰다 보면 중동 국가는 순위가 밀리기 마련이다. 중동에서도 산유국 중심의 외교를 먼저 챙기다 보니 이스라엘은 그 중에서도 마지막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스라엘이 우리나라 대외 관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실상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국력이 과거에 비해 높아진 상황에서 아쉬운 쪽은 오히려 이스라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미국과 쿠바가 53년 만에 전격적으로 국교 정상화를 선언한 것처럼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敵)도 없다는 명제가 가장 널리 통용되는 곳이 바로 외교 무대다. 눈앞의 실익만 내다보고 관계를 따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그렇다고 실익이 없지도 않다. 양국 모두 주변 국가로부터 안보 위협을 끊임없이 받는 지정학적 상황 속에서 우리 군(軍)은 레이더나 미사일 등 이스라엘 하이테크 방산 업계의 주요 고객 중 하나다. 12월 15일에도 방위사업청은 북방한계선(NLL) 감시를 강화할 목적으로 300억원 예산을 들여 이스라엘 무인기(UAV) 3대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국정원과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협력 역시 다른 어떤 국가보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좋은 분야다. 북한이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인 이란·시리아와 핵 개발·무기 원조 분야에서 손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양국의 관심사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12월 21~22일 장관급 인사로는 7년 만에 이스라엘을 방문한 것은 늦은 감이 있다. 주변 팔레스타인과 요르단도 함께 들렀다. 이들 국가 역시 7년 만에 우리나라 장관을 맞았다. 1년의 절반을 해외 출장으로 보낸다는 윤 장관 스스로도 “국제 문제들이 정상급 외교를 통해 해결되는 추세가 점점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 역시 외국 외교부 장관들과 전화·이메일은 물론 수시로 문자 메시지까지 주고받으며 물리적 한계를 좁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7년만의 양자 회담을 갖게 된 이스라엘 외무 장관은 윤 장관에게 오랜 바람 중 하나였던 자유무역협정(FTA) 논의를 꺼냈다. 통상 전문가들에 따르면 물품의 관세를 내리는 FTA의 특성상 제조업이 발달한 우리나라의 이득이 훨씬 크다. 이스라엘에는 변변한 제조업이 없다. 지금도 이스라엘 자동차·휴대전화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우리나라 업체들의 경쟁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체급 차이가 현격한 중국·일본 대신 한국을 동북아 시장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 양국간 FTA에 도리어 적극적이다. 비슷한 이유로 2004년 우리나라가 칠레와 최초로 FTA를 체결할 당시부터 이미 정부는 이스라엘을 또다른 FTA 후보국으로 거론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스라엘과 관계가 좋지 않은 중동 산유국 눈치를 보느라 양국 간 정상 외교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세계 국가들이 저마다 총성 없는 국익 전쟁을 펼치는 국제 외교 무대에서 우리나라의 성적표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