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이다. 희망의 덕담을 하고 싶지만 걱정이 앞선다. 살림살이는 나아질지, 대량 해고는 없을지, 이 시대의 수많은 ‘미생’들이 숨죽이며 새해를 맞는다. 언론계도 다르지 않다. 스마트기기의 확산이 가져온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쫓아가기 바쁘다. 따라가지 못하면 생존의 벼랑에 내몰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크다. 그만큼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외적 환경의 변화는 언론계 내부의 혁신을 자극하고 있다. 일명 ‘모바일 혁신’이다.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가 나온 뒤 경쟁하듯 혁신을 말한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변화의 목표가 뚜렷하지 않고, 익숙한 관행이 뿌리 깊다. 시대의 트렌드를 읽고 선도적으로 이끌어야 할 언론의 안주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혁명적 변화 없인 생존할 수 없다. 위기이다.
진짜 위기는 미디어 환경이 아니고 내부의 불통일지 모른다. 지난해 언론계를 달궜던 MBC와 YTN 내부의 모습은 그 불온한 징후다. 해고의 올가미로 손발을 묶는 것도 모자라, 사쪽에 찍히면 보도와 무관한 부서로 ‘귀양살이’ 보내는 일을 거리낌 없이 행사하고 있다. ‘방송의 사유화’ 수준이다. 불의에 저항하던 기자들은 인사불이익과 온갖 탄압에 숨죽여 지내고 있다. 진실 보도를 사명으로 권력을 감시했던 기자들이 현장에서 사라지고 있다. 눈치 빠른 시청자들이 방송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똑바로 좀 해라’며 질책하지만 올곧은 소리에 이미 귀 막은 세력은 묵묵부답이다. 정권과 코드맞추기에만 계산기를 두드릴 뿐이다.
위기 아니었던 때는 없었지만 현실은 갈수록 무겁고 무섭다. 올해는 박근혜 정부 3년차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은 버려졌고, 정부는 신뢰를 잃었다. ‘통일 대박론’은 온데간데없이 말만 남았다. 쪽박 찬 신세다. 얼어붙은 남북관계는 해빙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권력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언론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디서부터 엉킨 실타래를 풀어야 하는가. 신뢰 회복이 급하다. 보도 내용이 공공의 복리와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살펴야 한다. 권력이나 자본의 이익에 더 치우쳤다면 반성하고 악습을 끊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 곁으로 다가가야 한다.
감시견의 노릇을 제대로 해야 한다. 불의와 부당함에 대한 감시는 곧 언론의 존재 이유다. 그중에서도 권력에 대한 감시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박근혜 정부 2년 동안 많은 갈등이 있었던 까닭도 합리적 토론보다 맹목적 복종을 요구하는 분위기를 견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론이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 비겁함을 보이지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기자 스스로는 일상의 안온함을 경계해야 한다. 따뜻한 양지에만 있으면, 음지의 불편함을 모른다. 낮은 곳을 늘 살피고 약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줘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기레기’란 치욕스런 이름이 덧씌워진 건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새해를 맞이했지만 희망의 언어를 쓰기엔 부끄러움이 많다. 오늘의 언론을, 기자를 돌아보니 더욱 그렇다. 지금은 더 부끄럽지 않은 기자가 되어야 한다는 약속이 더 절실하다. 희망을 말하지 않는 이유이다.
그래도 작은 희망의 씨앗들을 보았다. 기자협회보가 새해 기획으로 마련한 것인데, ‘기자는 00이다’는 물음이다. 당신은 어떤 기자입니까. 어떤 기자가 되기를 원합니까.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기자는 소금이다. 기자는 징검다리다. 기자는 바보다. 기자는 서비스업이다. 기자는 무지개다. 기자는 장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