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샤를리다”를 외치는 파리 시민들이 지난 주말 거리를 가득 메웠다. 시위에 참석한 파리 시민이 180만명 가까이 된다고 한다. 인구가 220만명 정도인 파리에서 4명 중 3명꼴로 시위에 참석했다니 믿기 어려울 정도다. 이날 프랑스 전역에선 370만명 이상이 시위에 참석해 프랑스 역사상 최대 시위 인파를 기록했다.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해 세계 34개국 정상들이 함께 했다고 한다. 이들은 테러로 희생당한 ‘샤를리 에브도’ 기자들을 위로하고, 언론자유를 외쳤다. 자유 언론을 위해 모든 프랑스가 하나가 된 역사적인 날이었다.
다음날 한국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전각본설’ 등 지난해 기자회견 논란을 염두에 둔 듯 좌석배치에도 신경을 썼고, 초반부터 핵심이슈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질문을 한 기자도 12명에서 16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대통령은 변하지 않았다.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핵심 현안에 대해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만 했다. 때로는 질문과 무관한 얘기를 하기도 했고, 아예 다른 질문에 같은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면서 측근들에 대한 비호에는 단호하고 명확했다. 나라를 뒤흔들어 놓은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사건’에 대해 모두 조작과 허위라고 일축했다. “이번 논란으로 비리가 없다는 게 확인됐다”며 ‘비서 3인방’과 김기춘 비서실장의 교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남은 임기 동안에도 어떤 논란과 의혹이 제기되든 이들을 통해 나라를 이끌겠다는 것이다. 측근 실세에게 면죄부를 주는 기자회견이자 막강한 권력이 여전히 이들에게 있음을 확인해 주는 기자회견이었다. 대통령의 폐쇄적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국민적 우려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과 면담을 거부하고,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선 국회 탓을 하기도 했다. 기자회견장에서조차 기자와의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다. 기자의 질문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고, 답변의 부족함을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골든타임’같은 생뚱맞은 단어를 시도 때도 없이 사용했다. 국민과 언론이 뭐라고 비판해도 ‘나는 잘못한 게 없다. 앞으로도 이렇게 하겠다’는 대통령의 독선과 불통이 확인된 기자회견이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들에게 아쉬움이 남는다. 중복질문을 막기 위해 기자단 추첨으로 질문할 기자들을 정했다고 한다. 동료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부족하면 자연스레 추가 질문을 던지며 보충답변을 유도하는 게 독자와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기자회견의 모습이다. 기자들의 치열한 질문과 답변, 보충질문과 보충답변이 이어지며 사실을 찾아가는 게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건 아닐 것이다.
대통령이 동문서답을 해도 다음 기자의 질문으로 곧바로 넘어가는 건 국민의 알 권리와 부합하지 않는다. 시간이 좀 길어지면 어떠한가. 국민들은 대통령이 하고 싶어하는 말을 듣는 게 아니라 진실이 알고 싶다. ‘세월호 사고 당일 대통령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전 국민이 궁금해 하는 이 질문을 던진 기자가 왜 한 명도 없었단 말인가.
모든 국민이 언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언론자유를 외치는 프랑스. 이는 어떤 권력에도 당당히 할 말을 하는 프랑스 언론인에 대한 국민적 지지에서 나온 것이다.
소통하지 않는 대통령을 둔 것은 우리 시대의 비극이다. 이 대통령을 소통의 장으로 끌어내는 것은 우리 언론의 몫이다. 이 역할을 당당히 해낼 때 우리도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